‘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렸습니다.’ 맞다. 겨울이 찾아온 게 원인이고, 첫눈이 내린 게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눈이 내려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는 틀렸는가? 순서가 뒤바뀌었으니까? ‘당신을 보고 싶은 내 마음이 간절해서 이토록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이 또한 순전히 억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비가 쏟아진 원인이 당신을 보고 싶은 간절한 내 마음이라는 거니까. ‘내 마음’이 대자연의 섭리마저 뒤바꿔 놓았다고 했으니까.
‘얼큰한 해장국을 먹었더니 지난밤에 몽땅 마신 술이 다 깨는 것 같다.’는 애주가들이 흔히들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하지만 ‘해장국이 이렇게 얼큰할 줄 알았더라면 지난밤에 술을 몽땅 마실 걸 그랬다.’는 유머 감각이 풍부한 술꾼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가수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 의 끝부분이다. 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자꾸 ‘올라간다’고 했다. 어떤가. ‘하얀 눈 하늘에서 자꾸 내려오네’라고 쓴 것하고 비교해 보라. 찢어진 청바지처럼 발상을 바꾼 문장이 때로는 훨씬 신선한 울림을 주고 있지 않은가. 옛사랑>
녹음이 짙은 느티나무 숲에서 안도현 시인이 쓴 시 한 대목을 떠올린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라고 했던…. 그렇다. 여름이 이토록 뜨거운 까닭은 삼복 절기나 기상이변 탓이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매미가 저토록 악을 쓰고 울어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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