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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 그리고 일하지 않을 권리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 일에 매달리는 현대인들 / 자발적으로 자기를 착취

▲ 장세길 전북연구원 연구위원

‘자연인’이 뜨고 있다. 첩첩산중에서 홀로 살아가는 모습에 중년남성들이 열광한다. TV에 등장하는 자연인들은 사업에 실패했거나, 몸이 아팠거나, 지인에게 상처를 받아 세상을 등진 이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아프지 않고, 사업에 실패한 적이 없고, 가족과 친구에게 상처를 받지 않은 중년남성들도 자연인을 꿈꾼다. 경매로 나온 산을 살까, 고민하면서.

 

자연인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된다. 어떤 이는 자연인 대부분이 남자라는 사실에서 ‘외로운 늑대’ 본능을 끄집어낸다. 또 다른 이는 행복을 자식에게 양보하고 노동에 매진하다 가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양산하는 한국사회를 꼬집는다. 실패한 이들의 탈출구로 바라보는 이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자연인을 꿈꾸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삶터를 벗어나려 한다. ‘헬조선’을 벗어나려는 청년처럼.

 

천대받던 노동이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산업화 이후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노동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인간을 규정하는 본질로 받아들여진다. 노동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라는 말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마르크스(K. Marx)의 영향이 크다. 그는 노동을 생계수단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에게 노동은 행복을 위한 자유로운 활동이자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인간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이러한 노동의 변질에 있다. 사적인 소유에서 벗어난 노동의 자유를 위해 투쟁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일할 권리’는 산업사회에서 기본권으로 정립된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은 사회적 권리이자 국민의 의무이다. 정부는 개인이 일하도록 걸림돌을 없애고, 일자리를 찾아준다. 취업준비수당이라며 돈까지 준다. 일을 해라 그러면 더 많이 주겠다, 정 일이 없으면 삽질이라도 해라, 이 시대를 관통하는 생산적복지(workfare)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일할 게 없다고 하자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하라며 창업을 지원한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일을 하지 않으면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파렴치한이 된다. 일을 하지 않으려 하면 잉여인간, 백수건달로 낙인찍힌다. 이쯤 되면 일은 권리보다 의무에 가깝다.

 

현대인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린다.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노동은 사라지고 일을 할수록 성과사회의 자기착취에 빠져든다. “일할 권리는 비참해질 권리”이며, “일할 자유는 사실상 강제노동의 진보버전”이라는 프랑스의 좌파지식인 밀롱도의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인간은 일할 권리에 앞서 존재의 권리가 있다. 일할 권리가 있다면 ‘일하지 않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존재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성과사회의 자기착취에 빠지지 않겠다는 것이 일하지 않을 권리다. 적게 버는 대신 비참해지지 않겠다는 권리다. 많은 학자들이 노동의 진정한 자유는 노동의 탈상품화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TV 속에 나오는 자연인을 폄하하는 이들이 많다. 경쟁에서 뒤처진 낙오자, 세상에 맞서길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혹평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이들이야말로 자유로운 노동을 통해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인간임을 깨닫는,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의 자유를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가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발적으로 자기를 착취하는 현대인, 그들이 자연인을 꿈꾸는 이유는 비슷할 게다. ‘일하지 않을 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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