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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이 없는 게 잘못인가?

하류지향은 낙오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위한 연대이며 공생을 추구하는 태도이다

▲ 장세길 전북연구원 문화관광연구부 연구위원·문화인류학 박사

니트(NEET)족은 의무교육을 마치고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16~18세의 청소년을 말한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신조어는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하류지향 청년실업자로 뜻이 바뀐다. 우리나라에서 니트족은 근로의욕을 상실한 청년실업자로 불린다. 일본의 또 다른 신조어인 초식남(草食男)은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나 남성다움을 드러내지 않으며 연애는 소극적인 남성을 뜻한다.

 

여전히 청년문제를 상징하는 니트족과 초식남, 두 단어로 인터넷에서 찾아지는 글들은 온통 부정적이다. ‘잉여인간, 취업의사가 전혀 없는 백수, 게으르다, 무기력하다’. 니트족과 초식남이 사회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개인의 게으름과 무기력, 심지어 무능함을 탓한다. ‘나 젊었을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라는 꼰대스러운 말과 함께.

 

기성세대는 개미의 근면성실을 미덕으로 알고 자랐다.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며 ‘보이스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를 외쳤다. 꿈과 야망은 청년의 윤리이자 의무였다. 그러니 일할 의욕도, 연애할 생각도, 야망도, 꿈도 없는 요즘 청년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차다. 새마을운동, 한강의 기적을 넘어 세계와 경쟁하는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단다.

 

니트족은 노동에서 의욕이 없고, 초식남은 소비나 생활방식에서 욕망이 없다. 둘 다 욕(慾)이 없다. 그런데 의욕과 욕망이 없는 게 잘못인가? 욕망을 인간의 본성으로 본 홉스나 자연적 욕망을 굴레로 본 스피노자의 주장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꿈과 야망이 없는 게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다. 그 의욕과 욕망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일본의 청년담론을 다룬 『조용한 전환』의 저자 미노리교수는 의욕이 없다고 비판받는 일본청년의 활동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강한 의욕은 곧 상류를 지향하는 태도이며, 상류지향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힘없는 지역, 사람, 생물을 마구 파괴시킨다고 말한다. 의욕이 없는 것은 하류지향을 뜻한다. 하류지향은 낙오가 아니다. 경쟁보다 인간과 자연을 위한 연대이며, 파괴보다 공생을 추구하는 태도라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청년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다. 영혼을 팔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돈이 없어 연애를 못하고, 죽어라 일을 해도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청년일자리를 만드는데 힘을 쓴다. 미래를 꿈꾸라고 청년수당을 주고, 청년사장이 되라고 창업을 지원한다. ‘헬조선’을 벗어나는 것 말고 달리 답이 없다는 청년을 위해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지역에서 청년조례를 만들고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이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어떤 미래, 어떤 꿈인가가 중요하다. 청년에게 심어주는 꿈, 의욕, 야망이 사람과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될까, 걱정스럽다. 꿈과 야망이 없는 게 아니라, 경쟁과 파괴의 욕망을 거부하며 스스로 주류사회로 진입하지 않는 청년이 많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하류지향적 태도를 사회문제로 여기고 파이팅이 넘치는 청년을 추켜세운다. 스스로 옭죄는 성과사회에서 성공만을 좇게 만드는 의욕충전식 청년담론을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 다시 강조하면, 의욕이 없는 게 잘못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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