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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의 여정-전시품 맛보기

박물관은 놀이의 장소 / 관람은 즐거운 나들이 / 아이들이 익숙해지길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박물관에 근무하면서 가끔 “박물관의 전시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필자는 대체로 “전시품 앞에 서 있는 경험을 많이 하세요.”라고 대답할 뿐, 상대방이 기대하는 속 시원한 비법을 일러주지는 못한다. 필자의 태도는 매우 무성의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나마 그러한 답변이 최선이 아닐까한다. 전시품과 마주하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박물관을 여러 번 방문하게 될 터이니, 스스로 감상하는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면서 던진 답변인 셈이다.

 

본질적으로, 감상은 직관과 감성의 영역이고, 좋은 전시나 전시품은 감상자에게 창조적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전시품의 최종적인 완성은 감상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섣부른 감상법을 제시하는 것은 감상자가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을 방해할 수 있고, 되씹을수록 우러나는 작품의 무한한 맛을 한 가지 맛으로 단정짓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당나라 말엽의 사공도(司空圖)가 예술 작품에 대해 음식으로 비유하여 좋은 작품은 신맛이나 짠맛 그 너머에 있는 ‘맛 너머의 맛’이 있어야 한다고 했듯이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 역시 작품에 숨겨진 맛을 찾아가는 ‘탐미(耽味)’의 여정과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미(美)’의 여정은 ‘맛(味)’의 여정이기도 하다. 원래 ‘미’라는 글자는 달다는 뜻의 ‘감(甘)’으로 풀이되기도 하였다. 이 ‘감’자는 입 속에 음식을 하나 물고서 아직 삼키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하니 ‘미(美)’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을 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맛보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맛보기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다고 하는 맛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맛도 있는 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맛은 여러 맛을 다 맛보아야 알 수 있는 경험의 산물이다. 그렇게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을 다 맛보고 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 볼 수 있는 안목도 생긴다. 그리고 작품이 주는 정보가 짠맛이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맛보기를 통해 단맛도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더 높이 거슬러 올라가 무미한 맛, 담담한 맛이 곱씹어볼수록 맛이 있음도 알 수 있게 된다.

 

감상의 요결을 묻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이념적이고 교육적인 공간으로 인식한 데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박물관을 방문하기에 앞서 관련 지식을 공부하고 가야한다는 중압감을 갖고 있다. 그러하기에 작품을 본다는 것이 마치 작품을 분석하고 알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좋은 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박물관은 지루한 곳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통한 배움은 즐거움이 연계되었을 때에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원래 예술은 유희의 산물이며, 예술 감상은 그러한 유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한 면에서 필자는 더 이상 박물관 관람을 교육의 연장으로 여기지 말 것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어린아이와 함께 온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싶다. 박물관은 일상 속에 함께하는 놀이의 장소, 아이들이 커서 박물관에 익숙하도록 낮설지 않은 공간임을 알려주는 즐거운 나들이 정도로만 여기면 좋겠다. 박물관 나들이 자체를 아이에게 선물한다는 마음이라면 제일 좋겠다.

 

△김승희 관장은 공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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