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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물안갯길을 걸으며

인간의 이성·지혜 수반돼야 지구상 다양한 생명체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 이뤄

▲ 전수천 창작예술학교 AA 교장

이른 아침 창문을 여니 맑은 아침공기와 밝은 햇살이 눈 위에 내려앉아 황홀하게 반짝인다. 임실 옥정호 호숫가 작은 폐교에서 작업을 하는 중이다. 50년쯤 전에 지은 아담하고 소박한 작은 학교다. 빛 바랜 적갈색 지붕과 벽돌 조각이 부서져 내리는 낡은 건물이 정겹다. 요즘 보기 드문 나무 창살도 그대로다. 천정을 뜯어내니 나무로 짜맞춘 트러스 형식의 골격이 드러나서 그대로 두었다. 기분 좋은 공간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와 들풀을 본다. 건축물과 세월을 함께 한 아름드리 벚나무들도 봄이면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낸다. 바람에 그 작은 꽃이파리들이 운동장을 부유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배롱나무꽃의 화사함에는 잠시 숨이 막힌다. 이들은 낡은 교사에 생명을 불어 넣고 살아있게 만든다. 허투루 손을 댔다가는 그 조화를 깨트릴까봐 내부는 수리를 해서 사용하고 있으나 외관은 옛날 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작년에 서울 생활을 접고 작업실을 옮겼다. 한동안은 매주 서울을 들락거리며 방황을 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시골 사람들과의 소통도 어려웠다. 이게 아니다 싶기도 해서 다시 서울로의 회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기 위해 이른 아침 물안갯길을 걸었다. 매일처럼 인적 없는 산길을 걷다 보니 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풀꽃들과 수종을 알 수 없는 각양각색의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이 자기자리에 본연의 자세로 묵묵히 존재하고 있다. 가끔씩 만나기도 하는 고라니와 너구리까지….

 

관찰하며 바라보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렸을 때 혹은 대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바라볼 때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과연 얼마나 인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생명체이다. 인간에 의해 쓰여진 글이나 그림에도 생명이 있다. 생명을 갖는 존재는 모두가 아름답다. 그 본질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실질적인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때 새로운 창조의 창이 열리지 않을까. 이제 이곳에서 나는 풍요로운 창조의 힘을 축적해 갈 것이다.

 

임실의 물안갯길은 아름다운 산자락과 고요한 호수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걸음 한 걸음이 감동이다. 서울 근교에 이런 곳이 있다면…. 이미 대책 없는 난개발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터, 임실군의 환경보존과 개발정책이 조화롭다. 국사봉 산길 10여 키로 또한 임실군 행정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인공적인 구조물들을 흉측하게 여기저기 세우는 타 지자체들의 사례들을 반면교사로 삼았을까? 고마운 일이다.

 

겨울이 찾아오면 거의 매일처럼 이 산 저 산에서 소나무를 베는 엔진톱 소리가 웅웅거린다. 마을 사람들의 겨울 난방용 땔감이라 한다. 십 년 전에 폐교를 구입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환경이었다. 인근의 산들은 온통 잡목림이 없는 소나무산이었으며 학교는 소나무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포근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뒷산은 물론 산이 하나 둘 벌거숭이가 되었다가 밭으로 변하고 있다. 나름대로 얘기를 안해본 것도 아니지만 아직은 시골주민들에게 자연이나 환경에 대한 의식이 없다. 생활이 모든 것에 우선할 뿐이다. 지자체에서 그 어떤 노력을 한들 주민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환경의 파괴는 막을 수가 없다.

 

아름다운 자연만으로 세상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가꾸는 인간의 이성과 지혜가 수반되어야 지구상의 생명체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수천 교장은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하고,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받았으며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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