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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의 눈물

부안군위도 띠배띄우기는 유희 아니라 재액 실어가고 풍요와 안녕 기원하는 의식

▲ 정군수 석정문학관장

음력 정월 초사흗날,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 띠배굿이 벌어졌다. 만조시간이 되자 포구 앞바다는 가슴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출렁이고 있다. 상쇠쇳소리 따라 풍악이 울리고 대장군 영기는 세차게 바람에 나부꼈다. 띠배를 띄울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손을 얼게 했지만 칠산바다에서 분명 봄은 오고 있다. 사람들이 선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편당산제도 끝났고 주산돌기와 마중굿도 끝났다. 원당에서 열두 성황신에게 올리는 독축과 무녀의 춤도 끝나고 화주 화장 풍물패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 이제 용왕굿과 띠배띄우기만 남았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김상선, 이종순 할아버지의 배치기소리와 가래질 소리가 후렴을 주고받으며 느리게 물살을 타고 바다로 간다. 몇 십 년을 불렀을까, 묵은 세월을 견뎌온 당산나무처럼 격하거나 다급함이 없다. 끊길 것 같다가 이어지고 잦아들 것 같다가 솟아난다. 대를 이어가며 섬마을에서 살았던 어부의 애환이 물길을 타고 흐른다.

용왕 제상에는 삼색과일과 떡시루가 오르고 핏물 든 생돼지갈비가 드러누워 있다. 돼지간도 고스란히 올라와있다. 태평소가락이 까끔산 마루로 넘어가고 풍악은 고조되었다. 덩실덩실 춤추던 무녀가 맺힌 곱을 풀려고 느리베를 하늘로 띄웠다가 가슴으로 내리고 다시 하늘로 올리며 덩실 돌아 제 자리로 온다. 이 맺힌 곱을 푸는 것이 무녀의 신통력이다. 마디마디 맺힌 곱은 오늘 띠배에 실려 칠산바다로 나갈 섬마을 사람들의 시름이며 비원이다. 그리고 먼 바다에 버려야할 재액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느리베에 맺힌 곱이 풀려야 한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다. 다시 돌아 춤을 추어도 풀리지 않는다. 무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만 보았을까. 그 눈물이 내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무녀는 춤을 멈추고 다시 곱을 맺는다. 풀리지 않는데 다시 곱을 맺는 것이다. 아, 그러자 놀랍게도 곱이 풀린다. 바다를 볼 때 한 곱이 풀리고, 하늘로 손이 올라갈 때 또 한 곱이 풀린다. 무녀의 춤사위에 희열이 돌았다. 다시 맺어야 풀리는 역설을 무녀는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풍악을 따라 춤을 추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오늘 행사는 띠배띄우기로 대미를 맺는다. 띠배는 아침부터 주민들이 띠풀과 억새와 새끼를 꼬아서 엮어 만든 것이다. 그 안에는 짚으로 만든 일곱 제웅과 주작현무천 깃발이 꽂혀 있다. 풍악이 선창을 울리고 무가가 하늘로 오르자 모선인 해운호가 띠배를 끌고 먼 바다로 나간다. 오늘 행사의 절정이다. 띠배띄우기는 유희가 아니라 재액을 실어가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모선의 뒤를 주영호가 따랐다. 나도 거기에 끼었다. 원당이 있는 산이 멀어지고 노란 조기떼가 가득했던 칠산어장으로 띠배가 간다. 모선에서 울리는 풍악소리와 무가가 아스라이 먼 바다로 잠기어간다. 해군함정 한 척이 수평선 저만치 떠있다.

이날은 버스도 밥도 술도 자연산 홍합도 모두 공짜다. 우리 일행은 또 공짜 버스를 타고 파장금에서 격포로 나오는 배를 탔다. 일행 중 하나가 배낭에서 소주병을 꺼냈다. 반갑다. 종이컵에다 가득 따라준다. 원샷, 소주맛이 달다. 또 원샷, 달아오는 볼을 식히려고 갑판으로 나왔다. 봄이 벌써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뒤로 달아나는 위도를 보며 무녀의 눈물을 생각했다. 나를 전율케 했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통력에 대한 절망, 접신에 이르지 못한 자탄, 그것도 아니면 섬사람들의 비원 하나를 빠뜨려 곱으로 맺지 못한 회한.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무녀의 눈물은 가슴에 남아 시가 될 것이다. 벌써 격포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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