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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를 보며 정치를 생각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젊은이들 아픔 포용할 정치적 리더 선출되길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지방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매번 선거 때마다 어떤 기준으로 일꾼을 뽑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중 최근에 우연히 좀비를 다룬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화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우리 역사 속에서 좀비와 비슷한 귀신을 살펴보고자 하는 흥미가 생겼다.

우리의 전통 귀신은 보통 죽은 자의 혼을 말한다. 귀신은 보고 들을 수는 있지만 붙잡을 수 없는, 즉 질료적인 한계가 분명한 존재이다. 그런데 일부 억울하게 죽은 자의 귀신이 이승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한 귀신은 한 사회 집단의 존속을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 반면에 좀비는 질료적 한계는 없으나 가사(假死)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그 형상에서는 내면화된 분노를 표상하고 있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다니며 전염을 통한 무한 증식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우리나라는 작은 빙하기라 불리는 소빙기(小氷期)를 맞는다. 기후학자들은 이 소빙기의 절정을 1550~1700년에 걸친 약150년으로 상정하는데, 이때 조선 사회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선조 때(1567~1608)에는 전쟁과 절대적인 기아상태에서 사람들은 시체를 베어가고 서로를 잡아먹기에 이른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1594년에는 식인행위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릴 정도였다. 숙종대의 을병대기근(1695~1699) 때에는 400여만 명이 죽었는데, 전체인구의 23~33%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서양에서는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전쟁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기근과 역병으로 1693~1694년 프랑스에서는 1/10의 인구가 사망하였다.

조선 사회에 불어닥친 기근과 혹독한 재앙은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민간에 떠도는 흉흉한 귀신 이야기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반영 내지는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 심리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에 국가에서는 불안한 민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였다. 조선사회에서는 유교의 천도관(天道觀)에 따라 천재지변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으므로, 인간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는 방도에 천착하여 이를 해결해나가고자 하였다. 당시 조선은 유교 이념에 따라 예(禮)를 강조하는 사회로 가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는 불교의식인 천도재를 열어 억울한 귀신을 위로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천도재는 죽음으로 비롯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는 정치적인 행사였던 것이다. 이렇듯 재앙으로 인하여 국가적 상황이 위급할 때에는 설령 통치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게 바로 정치의 일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좀비를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의 매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좀비는 모순으로 가득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에 미국 영화에 처음 등장했다. 좀비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동원되거나 노동시장에 몸을 맡겨 사물화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좀비의 행태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의 이슈에 몰려들거나 쇼핑몰을 배회하며 해방감을 찾는 모습과 비교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귀신은 치자(治者)가 죽음 뒤의 세계에까지 뻗은 사회적 화합의 통찰을 보여준 예라면,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도 박탈당한 채 세계와 절연된 적개심에 가득 찬 존재를 투사한 모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좀비를 자신의 자화상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젊은이들의 아픔을 읽고 포용할 정치적 리더가 선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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