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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판의 속살 다양한 사회적 기능의 비밀코드 해제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전라도는 소리의 고장이다. 동편제 서편제가 전라도 속에 들어있고 수많은 명인명창들의 소리 유전자 또한 전라도 색이 짙다. 그러나 전라도처럼 소리문화의 우월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판소리의 일반적인 이해의 정도는 여타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리꾼과 고수와 청중이 한마당에 들어 소리와 장단과 추임새를 가진 공동체놀이 정도라는 것이 그것이다. 판소리 문화는 그러한 외형의 모습 외에 어떤 속살을 가졌을까? 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소리꾼들의 후손을 찾아서 집안의 구술문화를 조사해 왔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보니 공통된 것 중에 가장 먼저이고 큰 것은 판소리의 사회적 기능이었다. 그 이야기 중 한 토막을 엮어서 펼쳐보면 이렇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평양감사 환영연도 열 폭 병풍 중에 명창 모흥갑이 능라도 연회장에서 소리하는 장면이 있다. 축하 받을 평양감사를 중심으로 소리꾼과 고수와 청중 거기에 엿장수와 어린 아이까지 보이는 이른바 사농공상, 남녀노소, 추임새가 넘쳐나는 한마당 잔치의 모습이다.

그 소리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소리꾼은 평양감사 환영을 위한 공연소리 말고도 조선팔도의 고을 사정을 재담 섞어 쏟아냈다. 전라도 어느 고을의 수령은 흉작에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원성이 높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경상도 어느 고을 백성들의 하늘을 찌르는 원성의 소리, 그리고 충청도 어느 고을에서는 원님의 선정으로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하다는 등 조선팔도의 고을 실정들이 소리판에서 재담소리로 쏟아졌다. 소리꾼의 입을 통해 소리판으로 쏟아지는 조선팔도 고을들의 사정은 한양에서 평양감사를 따라온 사람에게 기록되었고 훗날 임금에게 보고되었다. 임금은 평양감사 축하 소리판 현장에서 들어온 정보를 토대로 각각의 해당 지방에 암행어사를 보내어 조선팔도에 정의의 법치와 왕권의 준엄함을 실행했다.

그 당시 평양은 어떤 곳이었을까? 평양은 국내와 중국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정보 터미널이었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사신과 선비와 장사꾼 그리고 중국에서 조선으로 나오는 물건과 사람들이 지나야 했던 곳이었다. 그러하니 평양은 국내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사회적 정보는 곧 바로 한양으로 보고되었고 그 역할을 수행하던 평양감사는 조선최고의 신뢰를 받은 요직이었다. 그래서 그 좋은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평양감사의 환영 소리판은 자신의 축하연을 빌어 조선의 많은 고을 정보를 한자리에서 살펴보기 위한 비밀업무 수행의 일환이었고 그 매개체는 소리꾼이 쏟아내는 재담소리에 들어 있었다. 조선팔도를 유랑하며 고을의 사정을 가장 잘 알게 된 소리꾼들을 초청하여 벌인 평양 능라도 소리판은 조선팔도 관리들의 비선 정보 수집 처인 셈이었다.

소리꾼들의 또 다른 사회적 역할 하나는 민방의학의 정보를 백성들에게 제공하여 생명과 환자를 구하는 것이었다. 소리꾼들은 조선팔도의 유랑자들이다. 오라는 곳이 많고 가야할 곳도 많은 사람들이었으니 그곳에서마다 사람들이 잘 활용하고 있던 민방의학 정보를 몸에 익혔고 그 정보를 다른 지방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소리꾼에게 물어도 모르는 병은 나을 수 없다”는 말이 백성들에게서 생겨났다. 소리꾼들의 후손에게서 들어온 구술에는 소리문화의 사회적 역할이 크게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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