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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들의 타산지석, 고 남기남 감독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7월 24일, 남기남 영화감독께서 돌아가셨다.

평생을 소위 B급 영화감독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당당하게 살아오신 발자취를 관조해보면 누구보다도 자기만의 일관된 선택을 해 오신 삶이었다.

그는 영화계에서 짜투리 필름을 남기지 않아 “필름을 왜? 남기남”으로 불렸고 영화 빨리찍기의 대가로서 외화쿼터(quota)제에 얽힌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외화쿼터제는 1963년부터 1987년까지 외화수입으로 번 돈을 열악한 한국영화 발전에 재투자하게 하는 정책으로 일정 편 수 이상의 영화를 제작하거나, 영화상을 수상한 제작자에게, 외화수입권을 주는 제도였다. 이에 연말이면 의무제작 편수를 못 채운 영화사들은 편수 채우기에 피가 말랐고, 이들의 구세주가 촬영 5일에 편집 3일, 후반작업 2일, 합해서 열흘이면 뚝딱 영화를 만들어내는 남감독이었다. 이를 방증하는 유명한 일화가 출연 배우들이 상대 배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남감독이 시키는 대로 자기 대사만 찍고 현장을 떠났고 스텝들도 너무 빨리 찍어 뭘 찍었는지 모르겠다 하는데도 나중에 남감독이 편집한 완성본을 보면 영화문법상으로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지금같이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는 편집기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남감독은 자신이 콘티요 편집기인 천재이셨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남감독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섰을 것이고 세계 각처에서 먼저 와 있던 수많은 영화천재들로부터 경배를 받고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 본다. 그는 24세 때부터 10여 편의 조감독을 거쳐 서른에 ‘내 딸아 울지마라’(1972 김지미 주연)로 데뷔하였고 다시 5년간 조연출을 한 후 ‘불타는 정무문’(1977), ‘불타는 소림사’(1978)등 액션영화와 한국 B급 영화를 대표하는 ‘평양맨발’(1980)을 감독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87년 쿼터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빨리찍기 대가로서 명성을 쌓았고 이후 저예산, 속성제작, 어린이 관객, 개그맨 영입, 유행어를 전략화 한 ‘남기남식영화제작기법’을 완성한다.

이 5가지 전략은 당시 아이들의 유행에 맞춘 것으로 심형래 등 젊은 개그맨들을 끌어들여 기상천외하고 좌충우돌 활극인 아동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그는 ‘영구와 땡칠이‘9(1989)로 270만이라는 당대 최고의 관객동원을 기록한다. 이후 영구시리즈를 이어가던 그는 심형래씨가 영화제작에 뛰어들자 슬쩍 비켜서며 2000년대의 신세대 개그맨들과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2003)‘를 선보이는 등 노년에도 왕성하게 제작활동을 하셨다. 고희를 바라보며 ‘달무리’(2011년) 라는 작품을 준비하신다 들었고, 3년 전에 옛 제자들과 술잔을 기울이시는 모습을 충무로에서 보았다는 지인의 전언 이후 근황을 몰랐었는데...그동안 당뇨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40여 년 동안 100여 편의 영화를 남긴 그는 제47회 영화의 날(2009년)공로영화인상을 받았다.

내게는 아직도 평양맨발’의 결투 장면이 생생하다. 삭풍이 불어대는 평양 강변에서 빵꾸 난 란닝구를 입은 이주일씨가 박치기를 하자! 갑자기 화면이 빨간 번개장면으로 바뀌며 뼈 부스러지는 뿌드드 소리와 함께 슬로모션으로 쓰러져가던 일본악질 마영달씨!-

남감독님의 부고를 받고 오히려 기획자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의 기상천외한 도전정신과 창의력, 영화콘티와 편집의 천재성, 흥행본능 등은 A급 기획자들에게도 타산지석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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