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65번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길의 혼잡을 피할 수 있어 좋고 차안에서 하루일과를 정리해보는 나만의 시간이 생겨서 참 좋다. 매주 월요일은 우리 전당을 둘러보고자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기도 하고. 오늘 아침도 나는 실내배드민턴장∂조경단 정류장에서 내리려고 버스정차버튼을 눌렀다. 버스가 서고 차문이 열리는데 보니 운전기사께서 보도블록과는 좀 떨어져 차를 세워서 가볍게 한 발짝을 뛰어야 보도에 착지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폴짝 뛰며 무심코 착지할 곳을 보니, 우와! 이게 웬일-지금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마도 버스문에서 보도에 착지하기까지 아마도 0.1초 사이에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과 결정의 기록이다. 0.1초 사이에 이렇게 수많은 생각과 결정이 이루어지다니 놀랍다- 나의 발이 착지할 곳으로 신원미상의 개미 두 마리가 뭔가를 입에 물고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안 보였으면 모르지만 봤는데 두 생명이 밟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급히 내 발의 착지 장소를 최대한 옆으로 옮기고자 허공에서 하강 중인 발의 방향을 바꾸느라 애를 쓰고 있는데 개미들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자꾸 착지 지역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계속 허공에서 발을 옮겨갔지만 착지 순간 나는 개미가 안 밟혔을 거라는 확신이 없어지며 마치 엄청난 유성이 지구와 충돌하듯 허둥대며 착지했다! 이 순간 등골에 땀이 솟으며 두 가지 생각이 솟아났다. 하나는 “개미가 눈에 띄지 않았다면 편히 일상적으로 착지했을 텐데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이”라는 개미를 향한 원망과 “이들을 밟았으면 뒤처리를 어쩌나. 그냥 보도블록에 구두바닥을 훑어버려? 아니면 발을 들어 밑창을 들여다 봐? 그러다 혹여 개미의 신체 일부가 붙어있기라도 한다면 어쩌지?”하는 불안에 머리는 빙빙 도는데, 나도 모르게 시선은 현장을 살피고 있다. 아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안 밟은 것이었다! 글자 그대로 머리칼 한 올 차이! 간발의 차이였다. 그런데도 이 두 개미는 -두 마리라고 못 부르겠다- 저희들은 엄청난 생과 사의 갈림길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내 발을 피해 우회를 하며 자기들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내 엄지손톱의 6분의 1 크기 밖에 안 되지만 제 몸보다 열 배도 넘을 초록 이파리를 입에 문 채. 생명을 살렸다는 엄청난 안도감을 느끼며 숨을 들이키는데 퍼뜩 장자가 떠오르며 내가 저 개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내가 걸어 온 길은 물론, 앞으로 갈 길에 전혀 생각하지 못 하는 위험이 있는데 운 좋게 피해 온 것은 아닌가.
문화예술기획자들이 모두 개미가 되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개미를 밟을 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미가 사람이 되어보면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길이었음을 알므로 해서 앞으로는 갈 길을 미리 살펴보고 가면서도 조심할 터이니 살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개미가 되어본 기획자는 내가 하는 기획 때문에 뜻하지 않게 아파하거나 생명을 해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살펴 볼 테니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버스를 내리는 시간이 1.5초가 더 길어졌다. 혹 지나가시는 개미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그리고 사무실로 향하며 나는 다짐한다.
“나는 개미가 되어 본 사람이다”라고. 내가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면 저기 우리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싱그럽게 다가와 나를 안아준다. 우리는 이런 사이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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