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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이야기

김은정 선임기자

지인이 얼마 전 의자를 샀다. 지난해 가을 끝 무렵부터 전주살이를 시작한 지인은 오랫동안 몸에 익은 책상을 가져왔으나 의자가 마뜩치 않아 이참에 좋은 의자 하나 갖고 싶다고 했다.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한 의자를 구하려고요.” 스치듯 듣게 된 의자의 조건은 아무래도 의외였다. 불편한 의자는 어떤 의자일까. 이야기를 듣다보니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게 하는 의자가 답이었다.

어찌어찌 지인이 원하는 ‘불편한 의자’를 찾는 일을 함께 궁리하게 됐다. 인체공학을 내세우는 형태에 세련된 디자인이 더해진 이름난 브랜드의 의자들은 애당초 대상이 아니었다.

익산에서 가구를 만드는 젊은 목수의 공방이 생각났다. 그의 작업실 한 편, 오래되었거나 새로 만들어진 것이거나 한 몸처럼 쌓여있는 의자들이 있었다. 푹신한 쿠션감이 살아 있는 의자가 아니라 온전히 나무로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의자들.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목수의 손길이 수백 번 더해져 그 자체로 아름다워진 의자의 품격은 마음을 빼앗기에 족했다.

높이와 넓이에 맞는 의자를 주문한지 보름 만에 의자가 완성됐다. 기본적인 구조에 종이끈을 엮어 만든 바닥이 조화를 이루는 의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쓰임새는 어떨까 궁금했다. “의자가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불편한 의자를 찾았는데 불편하지 않다니……. 덧붙인 문자가 있었다. “덕분에 호사를 누리네요.”

언뜻 불편하게 보이는 의자였으나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앉으면 더없이 편한 의자, 덤으로 좋은 자세까지 얻게 해준 젊은 목수의 의자는 한 달 가깝게 우리가 나누었던 의자이야기의 완결 편(?) 이었다.

이즈음 읽은 책에 ‘대통령의 의자’이야기가 있다. 입헌군주 국가인 영국이나 일본은 물론 역사가 일천한 미국도 의미 있는 행사에는 대통령과 내빈을 위해 별도로 의자를 제작하거나 특별한 의미가 담긴 가구를 내놓는단다. ‘의자 한 점에도 역사와 신화, 문학, 미술 그리고 철학이 담겨 있다’고 소개하는 저자는 ‘이러면서 이야기와 신화가 나온다.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전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쉽게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의자는 ‘리프로덕션(복제)한 의자’다. ‘의자 하나에 역사를 문화를 언급하는 것이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지나친 여유일까’라고 반문하는 저자는 그러나 ‘어떤 작업도 역사와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지인의 의자도 ‘일상의 맥락’으로부터 얻어진 것일 터. 생각해보니 우리는 ‘맥락’의 가치를 너무 쉽게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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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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