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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기금은 어떻게 우리를 갖고 노는가

김제김영 시인
김제김영 시인

얼마 전에 작은 행사를 하나 열었다. 선물을 300개 준비했다. 행사 당일 예상과는 달리 500여 명이 밀려들었다. 임원들은 당첨 없는 행운권을 더 발행하자고 재촉했으나 거절했다. 헛된 희망으로 사람들을 잡아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의 통계수치나 확률에 넘어간다. 확률과 통계는 누적된 데이터에 근거를 두고 결과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정답은 아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수긍하는 결과를 내게 된다.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일도 예외가 아니다.

문진기금은 수혜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조건으로 공모해서는 안 된다. 모자라는 밥그릇을 놓고 같은 구성원끼리 싸우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밥그릇을 숨기거나 줄이는 가를 똑똑히 살피는 일도 문화예술인의 중요한 책무다. 가난한 예술인이, 혹은 가난한 예술 단체가 돈줄 앞에서 비굴해지거나 초라해지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관계기관을 돕는 것도 문화예술인의 의무다.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들은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할 때마다 현장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이를 참조해서 건강하고 독립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확률과 통계는 위험하고 오만하다.

지원할 단체의 숫자와 유형, 활동내용, 역사, 특징, 구성원 등을 자료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충분히 활용해서 예산의 분배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지원금 신청의 조건이 나온다. 지원금을 받은 지 몇 년 후에 또 신청할 수 있는지도 나오게 된다. 지역 쿼터제 적용 여부, 첫 작품집과 신규 사업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 작품에 얼마 정도를 지원할지도 제시해야 한다. 예술 활동 기간에 따른 인센티브 여부, 한 작가가 평생동안 지원받는 횟수를 제한할지 말지 공고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불분명한 채로 해마다 습관처럼 문진기금 신청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물자가 쓸데없이 소비된다. 인력과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된다. 기금을 신청한 사람들의 희망 고문도 시작된다. 예술가들의 분노 게이지도 이와 비례해서 상승한다.

기금지원 신청을 받을 때는 되도록 상세한 조건을 밝혀야 한다. 예외규정은 없을수록 좋다. 정량평가가 기준이 되면 불만이 더 줄어든다. 정성평가는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몇 개의 작품만 읽고 작가의 수준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50년간 창작에 전념한 작가에게는 정성평가가 무의미하기도하다. 신청기준을 두리뭉실하게 발표해놓고 의아한(!) 선정 결과에 대해 심사자가 원망을 듣게 해서는 곤란하다.

지방자치가 정착되면서 시민들도 옛날의 시민들이 아니다. 정보에 밝은 사람도 많아졌고 똑똑한 시민은 더 많아졌다. 어떤 사람은 공직사회의 누군가와 인연이 있다고 은근히 과시하기도 한다. 예외를 적용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원칙대로 일을 하자니 누군가를 서운하게 하거나 찍힐 가능성도 다분하다. 할 수만 있거든 피하고 싶은 일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세우고 이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문진기금 심사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예술가들이 억울하지 않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즐겁고 고맙다.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된다. 그래야 예술이 아름답게 길다.

/김제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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