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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물성(物性), 세계미술계를 매혹하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1980년대 초 한국 현대추상회화 중에서도 앵포르멜(주로 마티에르, 질감에 중점을 둠) 회화 발전에 상당한 역량을 발휘해 온 한지조형작가들은 대부분 한지 닥 펄프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닥 펄프를 이용한 한지작업은 서구의 합리주의사상과 그 영향에 식상하여 한국고유의 사상과 얼을 담은 재료와 소재의 추구라는 공통된 숙제를 안고 있던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 부활된 매체였다.

한지 닥 펄프 작가들의 공통점은 우리 고유의 전통인 한지를 사용하여 회화세계를 개척해왔는데 한지라는 재료의 다양한 조형실험을 통하여 회화매체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지 닥 펄프의 질료적 물성을 끈질기게 탐구해왔다.

한지를 재료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 명성과 부를 축적한 한국작가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들 공통점은 한지를 덧붙이고 두드려 인간의 동작을 형용하는 다양한 행위들과 더불어 한지와 닥 펄프의 특유의 물성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를 매혹하고 있다.

유럽화단의 중심인 프랑스를 무대로 이진우(1959~) 작가는 한지를 겹겹이 붙여 한지 물성을 추구하는 조형작업으로 신체의 행위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수십 겹의 한지를 붙이는 반복된 행위를 통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광영(1944~)의 작품은 세계 미술시장과 아트페어에서 작품 한 점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데, 그는 조각으로 자른 스티로폼을 고문서가 인쇄 된 한지로 감싼 뒤 무수히 많은 한지 조각을 픽셀처럼 화면에 촘촘하게 붙여 마무리한다. 백호주의로 유명한 호주 고등학생용 미술교과서에 동양의 대표적인 작가로 소개되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고 주목받는 작가이다. 이보다 젊은 작가인 서수경(1977~)은 자존심 강한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세오(Seo)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는데, 몇 년 전에 국내 모방송사에서 그녀의 성공 신화에 대하여 다큐로 방영된 적이 있다. 주로 전주에서 생산한 여러 가지 색 한지를 공수하여 물감처럼 사용하는데, 우리 시각으로 볼 때는 그저 한지를 북북 찢어서 여러 층으로 반복해서 붙인 한지 콜라주 작업으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독일인의 눈에는 독특하고 새롭게 보였던 것이다. 세오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 바젤리츠가 스승이기도하지만 독일 유명화랑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서 그녀의 독특한 작품성을 인정하고 전속작가로 받아들여 작품가격이 국내외시장에서 급등하여 블루칩 작가로 통한다.

물론 작품가격과 작품성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미술은 자본시장과 더불어 작품가격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예전에는 작가의 평가가 사후에 이루어진 반면, 현대에는 생전에 작품성을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이처럼 최근 한지를 이용한 한국작가들의 작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현대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내 서구 회화재료인 유화와 더불어 한지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 한지 물성을 최대한 살려 마티에르(질감)를 구축하는 것이야 말로 한국적 앵포르멜 회화의 백미이자, 한지는 단순히 재료적인 소재 역할을 뛰어 넘어 그 질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한지를 질료적 가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물성과 타 재료와의 차별성에 매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기도하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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