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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가 이날치에게

곽병창 우석대 교수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날치라 하데-. 내가 엉덩이로 줄을 튕겨 하늘로 날아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짙푸른 바다를 박차고 허공으로 자맥질하는 날치를 떠올린 거였다네, 줄광대 어름사니, 줄 위의 인생이었지. 한때는 그저 세상이 다 만만하였네. 저 아래서 거드름 피우는 양반, 환호하는 군중들 모두가 발아래 까마득하였으니 말일세. 아비는 평생 땅만 보고 굽실거리던 머슴, 나는 하늘을 보고 싶었네. 문득 박차고 나와 줄을 탔지. 봐라, 떵 더러러러러, 누가 더 높으냐, 누가 이 세상에서 젤 높은 데까지 솟구칠 수 있는가 봐라-. 그러다 소리판에 홀렸네. 줄 위에서 호통 치던 소리가 너무 크다고, 걸걸하게 십 리 바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아깝다고들 했지. 소릿길로 마음을 정한 뒤에도 고분고분 수행고수나 하는 일은 성에 차지 않았네. 갑질 하는 명창 세숫물 엎어버리고 뛰쳐나왔지. 내가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는 소리에 조정 높은 양반이 내기를 걸기도 했다네.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에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더니 큰돈을 내어놓더군. 그렇게 소리로 한 평생 거리낌 없이 살았다네. 새타령을 하면 새가 날아들었다는 소문이사 어지간한 소리꾼한테는 다 따라붙은 것이니 그리 내세울 것도 없네. 나는 그저 나랑 비슷한 사람들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외치고 터뜨렸을 뿐이고, 내 소리에 함께 울고 웃은 밑바닥 청중들 덕분에 한 평생 낭창낭창 잘 살았네-. 양반, 부자들 덕에 밥, 술, 고기도 잘 먹고 살았으나 그들 비위에 맞춰 내 소리 굽혀본 적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복 받은 인생일세.

이날치밴드라니, 이 무슨 묘한 이름인가?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짐승이 내려온다.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범이 내려오는 대목을 어찌 그리 신통방통하게 갖고 노는지, 저 세상 가던 명창들까지 다 나와서 사지를 나풀거릴 지경일세-. 내 이름을 갖다 쓰다니, 아마도 날렵하고 부르기도 친근하니 그리 했을 터이지만 나로서는 새삼 가슴이 벌렁벌렁 오지고도 반가운 일일세. 요즘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이승과 저승이 헷갈리어 분간이 안 될 참이네. 내가 백여 년 전에 심청가나 춘향가의 슬픈 대목을 즐겨 불렀던 건 다 처량하기만 하던 시절 덕이었네. 그대들이 수궁가를 들고 나오면서 사설을 새로 짠 것도 아니고 쉽게 알아들으라고 풀어놓은 것도 아닌데, 지금처럼 온 세상이 들썩거리는 건 다 그 오묘한 성음과 장단 덕인 듯싶네. 한없이 반복하는 자진모리의 쑥덕거림에 온갖 선율악기들이 들락날락 노니는 품이 영락없이 내 청춘시절의 천방지축 발걸음을 닮은 듯도 하네. 그 발걸음 잃지 마시게. 이리저리 치이고 지친 세상 사람들 그저 너나없이 흔들흔들 놀게 해주는 게 으뜸광대 사는 길이라네. 게다가 배운 대로만 따라 하기보다 그대들 사는 세상의 희로애락을 담는 게 진정한 소리꾼이라는 진리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니 더 보탤 말이 없네. 허나 자네들을 규정하고 붙들어 두려는 이런저런 시도에는 부디 거리를 두시게. 광대라는 이름은 돈으로도 명성으로도 다 잴 수 없는 것일세. 그것들마저 가지고 노시게. 그래야 더 빛날 것일세. 하나만 더, ‘애매모호한 춤패(Ambiguous dance company)’ 하고도 그 판 오래오래 잘 꾸려 가시기를-. 나도 내내 곁에 있겠네. 흔들흔들-. 촤르르르르르-. /곽병창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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