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더 지난 2000년 4월 9일이다. 그날 오후 전북예술회관 3층 공연장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특별한 무대가 열렸다. 이일주 명창의 판소리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난석 이일주의 소리판’ 이었다. 제자들이 존경의 뜻과 정성을 모아 만든 무대. 이미 명창의 반열에 서있는 중견 명창과 젊은 소리꾼들, 초등학교 유망주들까지 50여명 제자들은 육자배기나 판소리 연창, 단막 창극 놀부전으로 스승의 소리 길을 빛냈다. 그러나 무대의 백미는 역시 자신의 특기를 제대로 발휘하는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 으로 화답한 이일주의 소리였다. 흥부가>
명창은 서편제 대가 이날치의 후손이다. 아버지 이기중(이날치의 손자) 역시 판소리를 잘하여 소리꾼으로도 이름을 알렸는데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소리를 배운 이일주는 일찌감치 명창 재목으로 주목 받아왔다. 그는 박초월 김소희 명창 문하에서 공부했지만 이후, 동초제 다섯 바탕을 온전히 계승한 오정숙 명창을 사사하며 동초제 소리를 받았다. 대를 잇는 서편제 대신 동초제 소리를 잇게 된 이유다.
그의 소리는 ‘높고 단단하고 제대로 쉰 치열한 소리’다. 이 소리는 판소리에서 최고로 치는 자질이기도 한데, 판소리 연구가 최동현 교수는 그를 타고난 기질에 거친 맛과 부드러운 맛, 슬픔과 너그러움, 그리고 깊은 그늘을 표현해내는 좋은 목 구성까지 갖춘 명창으로 꼽아왔다. 소리의 맛을 높이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너름새나 아니리 보다 소리 그 자체에 치중하면서도 청중들을 사로잡았던 힘이 여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건강이 나빠져 꽤 오래전부터 무대에 서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전라북도 지방무형문화재 보유자 자격(동초제 심청가)을 내놓고 명예 보유자가 됐다. 명예 보유자는 연행자가 공연 무대에 더 이상 설 수 없게 되었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자리다. 동초제는 다섯 바탕 중 수궁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보유자가 지정되어 있다.
최근 두 명 명창이 그의 뒤를 잇는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30일이 지나면 정식으로 보유자가 되는 절차다. 들여다보니 같은 시점에 같은 종목, 같은 스승의 제자들이 동시에 보유자 인정을 받는 일은 지방무형문화재 영역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두 명 모두 비교 선택이 불가할 만큼 역량이나 활동 등의 여건을 잘 갖추었다는 결과이니 반갑긴 하나 이례적 결정의 좀더 명쾌한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한 종목 복수 지정의 길까지 열어놓고도 정작 보유자조차 갖지 못한 동초제 수궁가의 처지(?)를 보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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