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4 22:15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벽메아리
일반기사

권토중래(捲土重來)

양현호 군산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양현호 군산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양현호 군산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유방(劉邦)과 항우(項羽)는 모두 절대적인 카리스마의 군주 시황제(始皇帝)가 죽은 뒤 극도로 혼란스러워진 진(秦)나라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한 사람은 새로운 제국을 세웠고, 다른 한 사람은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 결정적인 갈림길은 우리에게는 ‘사면초가(四面楚歌)’ 고사로 잘 알려진 해하(垓下)전투이다. 이 싸움에서 한나라 군대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항우는 해하가(垓下歌)를 짓고 애첩 우미인과 눈물로 헤어진 후 소수의 최측근 군사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는다. 회수(淮水)를 건너 장강(양자강)의 북쪽 지류인 오강(烏江)에 이르렀을 때 이 곳의 정장(亭長)은 항우에게 장강을 건너 본거지인 강동으로 돌아가 후일을 도모하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항우는 ‘8년 전 8천 자제와 함께 떠나온 내가 지금 무슨 면목으로 혼자 돌아가 부형을 대할 것인가‘라며 이를 거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때는 기원전 202년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그로부터 10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당나라 후기의 시인 두목(杜牧: 803~852)이 지주자사(池州刺史)의 관직을 받고 부임하는 길에 오강의 객사(客舍)에서 항우의 고사를 생각하고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를 짓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시의 마지막 행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온다’에 해당하는 권토중래(捲土重來)는 어떤 일에 실패 한 뒤 힘을 쌓아 다시 그 일에 착수한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되었다.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라 예측하기 어렵나니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사내대장부라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

 

항우가 강동으로 돌아가서 힘을 키워 훗날을 도모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은 서른을 갓 넘긴 패기만만했던 영웅이 유일하게 패배한 전투를 지나치게 수치스럽게 여긴 나머지 재기의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역설적이게도 역사를 보면 초한전쟁의 많은 전투에서 패자(敗者)는 유방이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유방은 항상 새로운 기회를 도모하기 위하여 때로는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초한전쟁의 승자가 되었다.

우리는 비록 초와 한이 서로 다투던 시절처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모습은 아니지만, 개인이던 조직이던 심지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일상적으로 많은 도전, 경쟁, 평가에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도전적인 상황의 결과가 항상 우리 편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실망스러운, 때로는 가혹한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있다고 본다.

수차례의 전투에서 졌지만 결국은 전쟁의 승자가 된 유방의 태도를 취할 것인지 단 한차례의 전투에 지고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항우의 입장이 될 것인지는 바야흐로 선거철을 앞두고 다시 뜻을 세우려는 많은 분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현호 군산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