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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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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동화작가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밖에 하지 않던 내가 기지제까지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아파트를 나와 중, 고등학교 중간에 놓인 다리를 지나면 엽순 공원이 나온다. 엽순 공원 안쪽으로는 저류지가 있다. 빗물을 일시적으로 모아 두었다가 바깥 수위가 낮아진 후에 방류하기 위한 시설인데, 요즘에는 철새들이 물속에서 헤엄을 치거나 풀밭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쪼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가 있다. 공원에는 어울림 광장, 체력 단련시설과 어린이 놀이 공간이 있고 야외무대도 있다. 테니스장과 축구장, 반려동물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엽순 공원을 지나면 기지제가 나온다. 기지제는 1934년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한쪽으로는 저수지, 또 다른 쪽에는 갈대숲이 우거진 습지가 조성되어 있다. 시간이 쌓이다 보니 생태가 조성되어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이 목격되곤 한다. 봄 산책을 하면서 뱀을 보기도 했고 담비처럼 생긴 동물을 보기도 했다. 겨울철의 저수지는 오리떼들의 공간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오리 떼들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은 산책길의 또 다른 묘미다. 최근에는 기지제에서 수달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니 도시 속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그곳에 포크레인이 등장을 하더니 갈대숲 한켠이 사라졌다.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친화 공간조성 사업으로 바닥 분수 시설부터 유아 놀이터 및 휴게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인공적인 어린이 생태 공원을 만들기 위해 거의 100년의 시간 동안 조성되었을 갈대숲 한켠이 잘린 것이다. 갈대 숲은 저수지와 이어진 습지 속의 길, 즉 동물들이 이동 길이다. 실제로 어린이 놀이터나 휴게 공간을 만들기가 적합한 장소도 아니다. 습지 인데다 곳곳에 뱀 출몰지역이라는 팻말도 서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미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무한히 넓게 마련되어 있는 곳이 바로 엽순 공원과 기지제이다.  

이미 조성된 사업이고 시작된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생태 공원을 만들어 체험 공간을 만든다니 호응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개발하는 것이 아닌 보호하고 지켜야만 생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저수지 한 바퀴를 도는 것만으로 생태 체험이 부족한 것일까?

혁신도시와 만성동이라는 새로운 도시가 생겨나기 전에는 조용했을 기지제가, 주민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한다며 다리도 만들고 밤에도 걸을 수 있게 불도 밝혀 놓았다. 그리고 이제는 어린이 생태 공원을 만들기 위한 터가 되기 위해 터 일부를 잃게 되었다. 부디, 이곳은 사람들의 공간이 아니라 기지제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원래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먼저 개발을 해도 좋은지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진 곳을 애써 외면하면서 속으로만 공허하게 소리친다.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박서진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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