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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급허고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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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만5세 입학’이라는 졸속 정책으로 자리를 내놓은 박순애 전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의 자유자재 서울대 복귀가 ‘그들’만이 누리는 신이(神異)한 능력(?)으로 느껴져 씁쓸하다. ‘만5세 입학’이 그다지도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을까? 정책 제시의 즉흥성과 졸렬성도 문제지만, 교육부장관이 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 화가 난다. 

지금 우리 교육은 상당부분 ‘헛짓’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책 안의 글자는 읽지만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시험문제를 받고서도 묻는 내용을 모르는 상황이 속출하기 때문에 ‘헛짓’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한’이 ‘심심한(甚深:매우 깊은)’인 줄을 모르고서 왜 사과를 ‘심심하게(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없게)’ 하느냐고 따지고, “네 처지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자 ‘십분’이 ‘십분(十分)’ 즉 ‘100%’라는 뜻인 줄을 모르는 학생은 “왜 이해를 10분(minute)만 하고 마느냐?”고 시비를 건다. 상당수의 초등학생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국’이 ‘나라 국(國)’자 임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외우기만 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OECD의 「국제 성인 문해력(文解力:문장을 이해하는 능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문맹률은 75%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라고 한다. 영상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책을 읽는 기회도 줄고 독서의 필요성도 절실하게 느끼지 않기 때문에 문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문해력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헛짓’을 하고 있다. 국어 중에 한자어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자교육을 금지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학생과 국민들이 한글로 쓴 글자를 읽기만 할 뿐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한자를 알면 안중근의사를 지칭하는 ‘안의사’를 ‘안과 의사’라고 하는 일은 없을 테고, ‘금일’을 금요일로 혼동하지도 않을 것이며, 병역이 ‘兵役(군인으로 일하는 것)’임을 배웠다면 코로나로 인한 격리휴가의 이유를 ‘병역’으로 택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미 군정시대에 시작하여 사실상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글전용’ 때문이다. 한자어가 대부분인 국어 교육을 한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듯이 ‘속뜻’은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일찍이 최현배가 주장한대로 단어를 현시적(눈에 보이는 대로), 평판적(판에 찍힌 대로)으로 읽게만 하고 있으니 글자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자가 영어보다 어렵지 않음에도 한자는 어렵다는 말을 세뇌하듯이 반복하니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한자를 기피하고 있다. 수 만개의 단어를 일일이 외워야 하는 영어에 비해 한자는 낱글자 1000자만 알아도 학습(學習), 학생(學生) 등처럼 수만 개의 단어를 조합하여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214개 부수(部首)만 익히면 대부분 한자의 뜻을 짐작할 수도 있고 글자꼴을 쉽게 익힐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소리글자 한글과 뜻글자 한자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인데 ‘한글전용’이라는 잘못된 어문정책으로 인해 문해력이 형편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를 우선 생각하여 교육의 방향을 바로잡고 질을 높이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뭣이 급하고 또 중한지’를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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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5세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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