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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김장의 문화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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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필자는 계절보다 절기의 흐름을 믿는 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다양한 이상기후 속에서도 절기만큼은 ‘웬만하면’ 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나 신기하리만큼 우리 삶의 방식이나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에서 절기는 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얼마 전 24절기 중 입동(立冬)이 지났다. 올해 달력도 달랑 한 페이지만을 남겨두고 있으며, 어느덧 겨울에 들어섬을 알리는 입동. 가을은 완연히 깊었으며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홀가분한 모습이다. 이 입동이라는 절기에 들어맞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입동이 지나면 김장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본격적으로 추운 겨울에 들어서기 전 배추나 무 같은 뿌리채소는 맛이 좋다. 더 추워지기 전에 곳간을 든든히 채우고, 우리 내 식탁에서 빠져서는 안 될 김치를 준비했던 시간. 김치를 만드는 무수한 역사를 거치며 자연히 알게 된 삶의 지혜를 나타내는 속담일 것이다.

늦가을에 한꺼번에 많은 양의 배추나 무 등을 김치로 만드는 행위를 우리는 ‘김장’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행위이자 일정 기간이며 한국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문화이다. 그래서 판소리라는 노래 자체보다 ‘판’이라는 개념의 문화에 흥미가 있는 소리꾼인 나는 ‘김장’이 가지는 문화에 집중한다.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채소에 절임을 하여 저장하는 음식인 김치를 담그는 행위는 어떤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세계적 문화유산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야말로 한국의 특정 계절에 행해지는 독특한 문화 형태를 띠기 때문일 것이다. 김장철에는 가족, 이웃, 친구 할 것 없이 손을 보탠다. 다양한 공정이 필요한 작업이며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하므로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중노동을 하는 명절과도 같겠지만 예로부터 김장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가 함께 일하고 만들어가는 단합의 연례행사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안 마다의 고유한 김치는 마을의 이웃 식탁으로 전해지고 모두가 서로의 김치를 맛보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지금이야 1인 가구의 형태도 많고 가족 규모도 축소되었으며 시중에 판매되는 공장식 김치도 많아지고, 김치를 만들 줄 아는 사람도 적어졌다. 하지만 김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김장하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김장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을 걸쳐 나타나는 사회적 생활관습이 아니던가. 단순히 김치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가족만의 전통과 풍습을 이어나가며 함께하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정서적 유대감 속에 우리 사회는 김장철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김장은 나눔이다. 먹거리와 맛에 대한 나눔이며 힘든 노동을 나누는 품앗이이다. 김치를 함께 만들고 나누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김치 맛을 통해 지역의 색깔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더 작게는 가정마다 가지는 다양한 맛과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김장을 앞두고 사회의 더 다양한 모습에서 나눔을 가질 필요를 느낀다. 그것에 가장 큰 나눔은 공감이다. 서로의 힘듦을 공감하여 나누고자 하는 마음, 누군가의 결핍을 공감하여 채우고자 하는 마음. 더 나아가 각자만의 맛과 멋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너그러움. 김치를 만드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김장이라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고유 관습으로 지속되길 희망한다.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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