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 대한 법적 수습∙정치적 수습이 안 되고 있다.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덕적 책임은 느낀다는 높은 사람들은 많다. 어물쩍거리며 자리 지키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사실 도덕적 책임은 무한 책임이다. 도덕적 책임은 사람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법적 책임보다 더 큰 것이다. 그리고 정치는 도덕적 책임, 그 무한 책임을 떠맡는 직업이다.
2007년 9월에 오려 둔 한 신문 사설을 꺼내 읽었다. 17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발간된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법질서 확립 방안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가 뗏법 사회로 되었다고 비판하며 법치 사회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동조합이나 이익단체들의 집단적 행동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법을 제대로 지키면 뗏법이 없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모순되는 일은 파업 현장에서도 ‘준법투쟁’이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법대로 하지 않으니 노동자들이 불평등한 취급을 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법을 지키겠다는 것을 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정부나 경영자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경영자 쪽에서나 노동자 쪽에서 모두 법대로 하자는 ‘법치’를 요구하고 있는 모순된 법치 현상은 지금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수 십 년간 지속되는 법치의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우선 법 자체가 가진 문제이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당이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것은 전 세계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야만스러운 행위다. 그런데 나치당은 그 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법을 이미 만들어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사실은 법이 도덕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덕의 기본은 자연법이다. 사람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규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권 사상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기가 선택한 일을 하며, 자기 인생에 책임도 자기가 가진다는 사상이다. 오늘날 인권(人權)의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 자연법과 자연권은 오늘날 모든 민주주의 나라들이 법을 세우는 기초로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실정법은 모든 도덕 감정을 포괄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따져보면 법률과 도덕이 서로 모순되는 현상이 얼마나 많은가? 도덕을 국민 정서라는 말로 조금 쉽게 접근할 수도 있다. 어떤 판결에 대하여 대다수 사람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도덕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민 정서라는 것은 대체로 도덕과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 또는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실정법이 있다면 그 법을 바꾸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이기도 하지만 법과 도덕을 연구하는 일반 국민들이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일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권력을 쥔 사람들이 해석하는 법, 법 집행에 대해 국민이 일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인권 소외’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 소외’를 법치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도덕을 거스르는 법 해석이며 법 집행이다. 인권 소외를 따지는 기준은 간단하다. “힘없고 돈 없는 사람 눈에 눈물 나지 않게 하는 법”을 만들고, 해석하며, 집행하자는 것이다. 사람을 목적으로만 대접하고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도종 전 원광대학교 총장∙전 인문학 및 인문 정신문화 진흥심의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