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가뭄이 극심한데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마저 시원찮다. 엊그제 봄소식을 전한 벚꽃이 절정을 지나 하나둘 꽃잎을 떨군다. 이맘때면 꼭 봄비가 한두 차례 지나면서 낙화를 부추긴다. 올해도 꽃이 다 지기 전에 반가운 봄비가 찾아올 것이다. 자연의 섭리가 그렇다. 봄꽃 개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봄날은 짧아진다. 이렇게 꽃이 다 떨어지면 이 계절은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또 휑하니 지나갈 게 분명하다.
봄날 꽃놀이 명소를 꼽을 때면 빠지지 않았던 곳이 바로 ‘번영로 벚꽃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작로인 ‘전주~군산 100리 길’에 빼곡하게 이어진 하얀 벚꽃 터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벚꽃축제가 열리고, 축제장이 아니어도 벚나무 아래 꽃그늘에 자리를 잡고 봄을 즐기는 나들이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이 간선도로 곳곳에 임시주차장이 만들어지곤 했다.
하지만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라 했다. 병해충 피해와 노령화로 인한 고사, 그리고 태풍, 도로공사 등으로 벚나무가 수없이 뽑혀나가고 제때 보식이 안 되면서 꽃길은 시들어갔다. 번영로 벚나무길은 1975년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전북 출신 재일교포들이 기증한 성금으로 조성됐다. 당시 식재된 6000여 그루의 벚나무 중 겨우 절반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조사보고서가 2017년 전북도의회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무가 뽑혀나가면서 흐드러지게 꽃무더기를 피워내던 튼실한 벚나무 대신 앙상한 가지에서 겨우 꽃잎 몇장을 내밀고 마는 가냘픈 어린나무가 자리를 채워갔다.
화려한 명성 속에 30년 가까이 이어진 번영로 벚꽃나들이는 이제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전국의 나들이객들을 유혹하던 번영로 벚꽃축제는 2000년대 들어서 슬그머니 사라졌고, 상춘객의 발길도 끊겼다. 여기에 차량 통행량도 급격히 줄어 도로변 마을은 활력을 잃어갔다. 공교롭게도 벚꽃 터널이 무너져가던 2002년 이 도로 옆에 전주~군산 자동차전용도로가 건설되면서 근대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번영로의 위상은 급락했다. 그렇게 번영로의 명성이 퇴색하기 시작할 무렵 이 길을 대동맥으로 삼아 도약을 꿈꿨던 지역사회도 번영이 아닌 쇠락의 길을 가야 했다.
급기야 이 도로를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벚꽃길 복원사업’에 나섰다. 전북도와 전주‧ 김제‧ 익산‧ 군산시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33㎞ 구간에 벚나무를 새로 심거나 기존 수목을 정비하는 가로수 정비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사업의 성과가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해 보인다. 벚꽃은 다양한 꽃말을 갖고 있고, 그 중 대표적인 게 부와 번영이다. 이 도로에 벚나무가 식재되면서 도로명이 전군가도(全群街道)에서 번영로로 바뀐 이유다. 이 번영로에 다시 벚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다. 지역 발전의 염원을 담아 붙인 이름처럼 번성했던 번영로의 벚꽃이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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