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은 전쟁터나 선거판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국비를 유치하는 공모에서 진두지휘하던 전문가가 공모가 끝난 뒤 행정에서 손절 되곤 한다. 많은 국비를 지원하는 사업공모가 없던 문화계에서는 이런 일이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그런데 200억 원이 투입되는 문화도시 사업이 등장하면서 용병, 손절, 토사구팽이 문화계에서도 흔한 말이 되었다.
문화도시는 법으로 지정받는다. 두 단계를 거치는 지난해까지의 문화도시 지정 절차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경쟁을 뚫고 예비도시로 지정되더라도 1년 동안 지자체 예산으로 예비사업을 진행한 뒤, 다시 예비도시 간 경쟁을 이겨내야 본도시로 지정된다. 절차가 까다로운데도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 가까이가 지정 공모에 참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삼수, 사수 끝에 예비도시로 지정받은 도시가 한둘이 아니다.
경쟁이 치열하면 다른 도시보다 더 많은 사람과 재정을 투입한다. 문화적 자부심이 큰 도시일수록 문화도시를 희망하는 요구가 크고, 지정은 당연할 걸로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 높은 관심, 심지어 단체장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으니 '지정은 영웅, 탈락은 역적'이 된다.
재수 끝에 예비도시 지정에서 탈락한 뒤 실패의 책임을 떠안은 채 도시를 떠난 이들이 적지 않다. 문화도시의 영웅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영웅 대접은 법적 지정을 축하하는 자리까지이다. 전쟁이 끝나면 용병이 홀연히 사라지듯, 공모사업을 진두지휘한 전문가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은 도시가 많다. 전북만이 그런 게 아니다. 전국이 그렇다.
선정과 탈락, 두 가지밖에 없는 사업공모와 선정 이후 사업실행은 분명 다르다. 공모에서는 짧은 시간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문화도시 사업에서는 긴 호흡으로 도시를 바꾸는 역량이 중요하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영웅보다 여러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며 함께 가는 덕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정 이후에 역량이 있는 문화도시센터장으로 바꾸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센터장이나 사무국장이 행정과 마찰을 겪으며 스스로 물러나거나 지방선거 뒤에 바뀐 지역도 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예비사업을 진행한 문화도시센터장은 긴 호흡의 도시 바꾸기를 꿈꾸며 2년 동안 사활을 걸고 문화도시를 준비한다. 지정 이후에는 5년 청사진을 그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유야 어쨌든 받은 결과가 용병 대접이라면, 이게 토사구팽이지 않을까. 2년 동안 주민과 함께 문화도시를 학습하고 사업을 구상한 사람이 바뀌면 5년을 위한 예비기간 2년이 사라진다. 리더가 바뀌면 방향도 바뀌는 법, 이게 더 문제일 수 있다.
'용병문화'는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한때 널리 쓰인 말이다. 금융기업은 눈앞의 수익을 좇아 경쟁기업보다 연봉을 더 주고 사람을 채용한다. 돈 버는 데만 이들을 활용한다고 해서 용병문화라 불렀다. 이 용병문화는 장기적으로 금융산업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성과주의적 용병문화, 사람의 사고를 바꾸는 문화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자기는 용병이 아니라는데 결국 용병이 되는 현실,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용병 취급하려면 성공보수라도 주던가!”라는 그들의 외침이 이해된다. “ㅇㅇㅇ 센터장님, 잘 계시죠?”, 전국의 문화도시센터장과 만나거나 통화할 때 건네는 안부가 왠지 서럽다. 누구라도 문화쪽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행정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장세길 연구위원은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11년부터 전북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며 현재 전북학연구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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