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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문화유산 개념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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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올해 5월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국가유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관련 정책 환경의 변화와 유네스코 등 국제 추세에 맞추어 ‘재화’의 의미를 담는 문화재보다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유산’으로 명칭을 변경, 확장하고 세계유산과 유사한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세부 분류체계를 갖춘다는 취지이다. 이 법에서는 ‘문화유산’을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이라 정의하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헤리티지(heritage)라는 단어의 의미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사적 차원에서 출발했다. 즉, 개인이나 가문을 상징하거나 가치 있는 물건이 대대로 내려온 상태를 의미했다. 이후 민족국가(국민국가)가 성립되며 문화유산의 민족적 또는 민족주의적 가치가 부각되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공공의 문화유산 개념이 성립되었다. 문화유산은 민족,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의미 있는 특정한 과거를 환기시키고 공동의 기억을 형성시킬 수 있는 유형의 증거로 이해되었다.

공동의 기억 저장 창고와 같은 문화유산은 공동체의 가치 확립에 도움을 주고 그 상징처럼 역할하였다. 민족국가가 성립되는 시기 서구에서 문화유산은 국가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하여 국가의 자부심을 확립하고 국가 구성원들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아름답고 찬란했던 황금기’를 창조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국가의 기억이 결집된 이러한 문화유산에는 궁전이나 박물관과 같은 유형의 유산뿐 아니라 국기나 국가(國歌)와 같은 무형의 유산도 포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네스코의 활발한 활동에 의해 문화유산은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문화유산의 범주가 개인, 국가, 인류로까지 확장되면서 ‘문화적 산물’로서의 개념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문화유산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만들어져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산물로 인식되어 그 의미가 고정된 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문화유산은 현시대의 해석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동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정부, 전문가, 시민, 이해관계자 등이 특정 대상에 대해 갖는 집단 기억과 가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들 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문화유산은 현재 우리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해석에 따라 변화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문화적 산물로 인식하기 보다는 문화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유산에 대한 이러한 동적 인식을 ‘문화유산화(heritagization)’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문화유산화는 현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 과거를 선택하고 이를 대표화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어 그 특정 과거와 관련된 많은 사람의 서로 다른 의견이 취합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과 사회적 쟁점, 정치적 분쟁이 수반된다. 국가나 공동체의 기억 및 정체성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유산은 이러한 사회 정치화 과정 속에서 재해석되며 재평가되는 것이다. 이제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이기 보다 현재를 사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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