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핑계 새만금 예산 빼먹기”
여권, 새만금사업 소환 책임 부각
억지 주장‧지방정부 압박 중단을
끝났다. 시작하자마자 가슴 졸이며 남은 날짜를 세어야 했다. 파행으로 얼룩진 ‘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12일 마무리됐다. 한여름밤의 악몽이었다. 망신살이 뻗쳤다. 국민 몫이 된 부끄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끝났지만 끝맺지 못했다. 이제 기한 없는 책임규명의 시간이다. 여야 정치권의 ‘네 탓 공방’이 격화되면서 새만금사업이 통째로 소환되고 있다. 새만금이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 1991년 대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 때도, 2010년 33.9km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준공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여권에서는 작정하고 지방정부 책임을 부각하고 있다. 전북이 잼버리를 핑계로 새만금 SOC 예산 빼먹기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잼버리 팔아 지역예산 챙긴 대국민 사기극’ 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이때다 싶었는지 온라인에서는 지역비하‧혐오 발언이 쏟아진다.
견강부회(牽強附會)다. 전북도가 잼버리 유치에 나서면서 SOC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기폭제로 삼겠다는 의도와 기대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만금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봤다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국책사업인데도 예산 지원이 항상 쥐꼬리였다. 착공 30년이 넘었는데도 현장은 거친 모래바람뿐이다. 일정 부분 사업에 탄력을 받았겠지만 잼버리를 핑계로 고속도로와 내부 간선도로, 국제공항, 신항만 등 새만금 SOC 사업에 천문학적 예산이 부당하게 투입됐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들 SOC 사업은 잼버리와 관계 없이 정부가 확정한 새만금종합개발계획(MP)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여당이 전북도에서 잼버리를 이유로 건설을 요구했다고 주장한 ‘새만금~전주 고속도로’의 경우 30여년 전부터 추진된 ‘새만금~포항 동서횡단 고속도로’의 한 구간이다. 대구~포항 등 일부 구간은 이미 개통했고, 새만금~완주 구간(새만금~전주 고속도로)은 오랜 절차를 거쳐 2018년 5월 착공했다. 이후 전북도가 정부에 조기 개통을 요청했다. 2024년 말 완공 예정인 만큼 잼버리 이전에 새만금에서 서해안고속도로 분기점까지의 구간만이라도 조금 앞당겨 개통될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자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거듭 약속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쳤다. 조기 개통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없고 뺨만 맞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7일 “새만금 잼버리가 전북 발전의 촉진제가 될 수 있도록 잘 챙기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한민국의 미래가 새만금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새만금사업은 늘 이런 식이었다.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는 금세 등을 돌린다. 불과 10여일 만에 180도로 얼굴을 바꾼 여당의 태도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
수도권공화국의 위정자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국가균형발전, 지방시대를 외치던 그들이 ‘중앙정부를 비난한다면 지방자치의 미래는 없다’면서 지방정부를 겁박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앞다퉈 내놓았지만 항상 빈손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권 중심의 국가운영 기조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단언컨대 이런 식이면 이번 정부에서도 균형발전은 없다.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놓고 정쟁이 치열하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원인을 밝혀 책임을 따지고, 상응하는 조치도 내려야 한다. 당연히 전북도에서도 잘못한 부분은 무겁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든 총체적 부실‧파행이 어찌 한 두 곳만의 책임일까. 책임회피 의도가 엿보이는 권력집단의 견강부회식 주장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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