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아카데미 극장이 지자체에 의해 철거 되었다. 많은 영화인들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원형이 유지된 단관 상영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곳에는 새로운 복합 문화단지가 조성된다고 하는데 아카데미 극장의 문화적 가치나 의미는 경제 논리에 의해 그냥 사라져도 된다는 발상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 땅에서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상영한 <단성사>를 지키지 못하고 사라지게 한 업보라는 생각도 든다.
프랑스의 경우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에 만든 <열차의 도착>이나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이 1902년에 만든 최초의 SF 영화 <달세계 여행> 등 초창기 영화부터 최근의 영화까지 작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언제든지 옛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1919년에 만들어진 김도산 감독의 <경성전시의경>이나 <의리적구토>는 물론이고 그 유명한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다 사라지고 없어졌기 때문이다. 상영됐던 영화는 필름에서 나오는 납 성분을 추출하기 위해 태워져 버렸거나 밀짚모자의 패션용 태두리가 되기 위해 커팅 되어 팔려 나갔기 때문이다. 6.25전쟁으로 많은 작품들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 보존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큰 요인이었다. 다행히 현재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작품들을 수집, 보관, 복원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는데 예산 부족으로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어 아쉬움은 남는다.
얼마 전 김민기 대표가 운영하는 학전 소극장이 내년 3월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원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극장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학전이 갖는 상징성은 너무나도 크고 소중하다. <지하철1호선>이라는 뮤지컬을 통해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조승우 등의 배우들이 성장했던 장소이고 김광석을 비롯한 한동준, 동물원 등 라이브 무대를 거쳐 간 뮤지션들이 즐비했던 곳이다.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이 겹치며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던 모양인데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학전이라는 곳과 김민기 대표를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중반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한동준과 동물원의 박기영이 학전에서 콘서트를 하며 그곳을 찾게 되었고 거기에서 김광석과 친구가 되고 김민기 대표께도 인사드리게 되었다. 작고 불편한 좌석이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지척 거리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러한 추억을 경험한 관객들은 어림잡아 천만 명은 되리라 본다. 이들의 추억과 경험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될 위기가 온 것이다.
20년 전 학교에서 백암아트홀이라는 공연장을 지으면서 김민기 대표께 자문을 요청 드린 적이 있다. 김대표께서는 극장을 보시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주셨는데 화장실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 화장실은 지금의 배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규정 면적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지 관객의 편의까지는 생각지 못한 불찰을 단번에 파악하신 거였다. 이 때 이런 지적을 받지 못했으면 극장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나의 경우처럼 알게 모르게 김민기 대표의 도움을 받은 분들이 굉장히 많다고 알고 있다. 학전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문화적 가치의 보존이라는 명분 아래.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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