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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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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간다. 폐교의 위기는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폐교 소식이 들릴 때면 취재로 찾았던 학교가 생각난다. 20062월 문을 닫은 고창 무장면 만화리에 있던 신왕초등학교다.

2월 졸업식이 끝나면 문을 닫게 되는 시골 초등학교의 풍경은 쓸쓸했다. 전교생이라고 해야 열 명. 여섯 명이 졸업하고 나면 네 명 아이들만 남게 된 신왕초등학교는 그해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그동안 열 명 아이들은 두 개로 나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6학년 누나 형들과 함께 공부해야 했던 4학년 득주는 친구가 없어 재미없겠다고 말을 붙이자 형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다고 했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2, 3학년 세 명도 싸우지 않고 형제처럼 잘 지냈다.

그해 전북에서는 초등학교 세 개가 문을 닫았다. 그중 하나인 신왕은 10여 년 전부터 통폐합 대상이었지만 학교 지키기에 나선 주민들의 열정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던 터였다. 그러나 2005, 1학년 입학생이 끊기자 주민들도 결국 손을 들었다.

폐교를 받아들이는 의견서를 교육청에 제출하면서 교사들은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 없을까 고민했다. 신왕초등학교 30년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졸업식을 앞두고 발간된 여시뫼봉의 얼이 담긴 신왕교육 30100여 쪽. 화려하진 않았지만 70년대 중반, 학교가 문을 열자 아이들이 먼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고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돼 기뻐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부터 30~40대 중년이 된 어른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빛바랜 흑백사진, 신왕을 거쳐 간 632명 졸업생 명단까지 크고 작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교사들은 자료를 찾고 사진을 수집하느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어릴 적 꿈을 가꾸었던 초등학교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해 216일 오전 10. 급식실을 꾸며 만든 졸업식장은 끝내 울음바다가 됐다. 농촌의 아름다웠던 초등학교는 그렇게 소중한 이름을 잃었다.

올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홉 곳이 문을 닫는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들 말고도 폐교 위기에 처해있는 학교는 이미 스무 곳이 넘는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을 시행하겠다면서도 아예 폐교 관련 조례를 개정해 절차를 간소화했다.

사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환경에서 학교 통폐합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서 더 우려되는 것이 있다. 공간과 이름을 잃게 된 폐교의 쓰임이다. 오랫동안 마을의 중심이 되었던 이 공간이 소멸 위기의 마을을 일으키는 거점이 될 수는 없을까. 교육기관이 앞장서 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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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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