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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이야기로 전하는 행복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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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종 JTV PD

남도의 맛을 자랑하는 고장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외지에서 찾아오는 지인들이 있으며, 주저 없이 그들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 맛집은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나름대로 추천하는 곳은 객사 근처 ‘동창갈비’와 전북대병원 앞 ‘이연국수’, 전주남부시장내 ‘조점례남문피순대’ 그리고 익산역 앞 ‘엘베강’과 전주남부시장 ‘현대옥’이다. 

복잡하지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곳들이다. 맛은 기본이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연륜을 넘어서는 나름의 역사 덕분에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는 곳으로, 잘 차려진 프랜차이즈 식당과는 다른 그 무엇이 존재하는 우리만의 노포(老鋪)이다.

이 맛집 중 엘베강은 ‘역전할머니맥주’로 현대옥은 ‘현대옥프랜차이즈’를 통해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대기업의 물량 공세는 물론 유명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을 이겨내며 선전하고 있다. 잘 짜인 메뉴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음식 맛이 한몫을 했을 터이다. 반면 엘베강과 현대옥의 시작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다.

군산에 살던 김칠선 여사는 제주도에 다녀오는 길에 기차 안에서 어린 딸을 잃게 되고, 1982년 익산역 앞에 작은 호프집 엘베강을 개업한다. 애당초 돈보다는 잃어버린 딸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던 그녀는 3일간 냉장고에서 숙성한 생맥주와 저렴하지만 식사 대용까지 가능한 안주들을 푸짐하게 내어놓게 된다. 사람들은 살얼음생맥주의 신기함과 오징어입이라는 생소한 안주에 열광하게 되며, 국민 반찬 소시지가 저렴한 안주로 등장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어린 네 자녀를 홀로 키워야만 했던 양옥련 여사. 평소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인 콩나물국밥으로 1979년 전주남부시장속 작은 국밥집 현대옥을 시작한다. 오롯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함이며, 비장한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놀라운 신공이 시작된다. 토렴을 통해 국밥 최적의 온도를 맞춰내는 것은 물론, 속풀이 손님이 보는 즉석에서 마늘을 찧고, 오징어를 데치며, 대파와 고추를 썰어서 국밥에 넣어준다. 음식을 맛보기 이전 그녀의 손놀림에 모두가 반해버린다.

대한민국 골목상권을 점령하고,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대기업과 유명인들을 앞세운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음식 본연의 맛과 품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음식 속에 담겨,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이다. 엘베강과 현대옥이 갖고 있던 공간의 의미를 이야기로 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6대의 냉장고에서 숙성되는 생맥주와 맥주잔. 고작 8천 원인 오징어입과 2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제공되는 소시지 안주. 엘베강이 남들과 다르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은 딸을 기리는 김철선 할머니의 마음이 여전히 그곳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주문과 동시에 토렴하고 즉석에서 찧은 마늘과 시장에서 바로바로 구입한 대파와 고추로 맛을 내는 콩나물국밥에는 양옥련 할머니의 정성이 담겨있다. 자본과 아이디어로 이겨낼 수 없는 그 집만의 오랜 ‘이야기’야말로 신세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개성 강한 아이템일 수 있다.

김칠선과 양옥련. 두 할머니의 처음을 기억하며, 지금이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안내해 보자. 부족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맛을 넘어, 진정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음식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홍현종 J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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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종 #문화마주보기 #익산 엘베강 #현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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