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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 이대로 버려둘텐가

정읍 옛 운암발전소 수십년 방치
한반도 근대 농경사 소중한 유산
‘보존·활용 방안’ 적극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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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표 논설위원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다. 한반도의 곡창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한 근대 수리시설이기도 했다. 남해로 향하는 섬진강의 수자원을 상류에서 댐으로 막고, 호남평야 동진강으로 끌어내 서쪽으로 물길을 바꾼 유역변경식 발전소다. 한반도 근대 농경사를 대변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도 수십 년간 방치됐다.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지자체에서도 보존·관리에 손을 놓았다. 그러는 사이 입구에 잡목과 가시덩굴이 우거져 진입조차 어려운 흉물이 됐다.

섬진강댐 옥정호를 끼고 호반도로를 달리다 정읍시 산외면 쪽으로 방향을 돌려 산길을 가다 보면 호남평야의 젖줄 동진강의 첫물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물길을 따라가면 발원지에서 멀지 않은 곳,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산기슭에 덩그러니 서 있는 빛 바랜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난다. 옛 운암발전소다. 1931년 준공된 이 발전소는 1985년 그 역할을 인근 칠보수력발전소에 넘겨주고 폐쇄됐다.

일제(日帝)는 호남평야 식량 증산을 위해 섬진강 옥정호의 물을 동진강 상류로 끌어냈다. 동진강의 본래 물길은 정읍시 산외면 묵방산 7부 능선 여우치마을의 빈시암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길은 작은 개울의 형태로 산기슭을 내려오다 운암취수구를 통해 옥정호의 물이 유입되는 지점(팽나무교)에서 유량이 크게 불어난다. 과거 운암발전소에서는 이곳 취수구에서 흘러나온 물을 도수터널로 이동시켜 발전에 사용하고 동진강에 방류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성이 높다. 등록문화재는 개화기 이후의 근대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기 위해 2001년 도입된 제도로, 전북에서도 일본식 건축물과 옛 기차역, 근대 한옥 등이 속속 등록됐다. 운암발전소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읍시에서 문화재 등록 방안을 수차례 검토했다. 2022년에도 지역 역사문화자산 활용방안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운암발전소 현지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발전설비가 남아있지 않고 건물 내부도 훼손돼 문화재 등록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 한국전력은 1987년 운암발전소를 민간에 매각했고, 어느 종교단체에서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다 중단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상태로 장기간 방치돼 있다. 하지만 유역변경식 발전소의 상징 시설인 도수터널과 수압철관의 흔적은 건물 뒷편 산기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 핵심 설비인 발전기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강수력본부로 옮겨져 전시 중인 것으로 드러나 필요시 회수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건물 출입구에는 운암발전소라고 한자로 쓰인 명판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고대 수리시설인 김제 벽골제와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 그리고 이 댐의 수자원을 끌어내 발전에 사용한 뒤 호남평야·계화도간척지까지 흘려보내는 칠보수력발전소와 동진강 도수로, 영농기 풍년농사 기원 통수식이 열리는 동진강 낙양취입수문 등 주변에 한반도 농경사를 대변하는 시설물이 집적돼 있다. 이들 역사문화 자원을 연계해 한반도 농경문화 체험·교육 공간이자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우선 옛 운암발전소 관리대책이 급하다.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이 어렵다면 ‘정읍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또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매입해 인근의 농경문화유산과 연계한 역사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근대 수자원 개발, 그리고 농경사 측면에서도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전북의 소중한 역사문화 자산이다. 시각을 넓혀 보존·활용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더 늦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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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발전소 #호남평야 #등록문화재 #섬진강댐
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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