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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전통한지 복원보다 세계유산 지정이 우선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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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석 수묵화가·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한국의 전통한지는 무엇이며 어떤 제작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는가. 이 물음에 바른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화재청에서 한국 전통 한지 기술의 근거로 제시하는 자료는 류행영의 제지기술이다. 그의 전승 이력을 살펴보자.

“자신의 부친에게 배워 한지를 제작하던 김갑종 씨로부터 전통한지 제조법을 전수 받아 55여 년 동안 전통한지 제작에 몰두해 왔다. 김갑종 선생은 ‘일제 강점기 군용지’를 제조하여 납품하던 장인이었으며 그 제조 기술은 유일하게 류행영 선생에게만 전수하였다”

무형문화재는 계보 중심에 의한 전승을 기준으로 한다. 류행영은 그의 부친과 부친의 제자 그리고 보유자에게 이어졌다는 계보가 인정되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유일하게 전승받은 제지술이 일본 군용지 기술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한지장인을 지정하면서 일제 강점기 전쟁물자인 군용지를 만들던 기술자를 대한민국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한지장으로 지정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전통한지에 대한 첫 단추부터 어긋나게 만든 파행의 단초다.

지금 우리는 한국 고유의 한지에 대해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리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부르짖는 황당무계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 한지기술은 정립되어 있는가? 한지를 뜨는데 사용하는 발과 발틀은 전통성을 가지고 있는가? 연구 성과는 물론이고 연구를 시도한 기록조차 없다. 도구뿐 아니다. 소위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조차 종이를 뜨는 전통 초지법이 무엇인지, 어떤 기법이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하나의 줄이 발틀의 뒤에 매달린 채 물을 흘리며 뜨는 기법만이 유일한 한국식 초지법이라 주장하지만 조선시대 유물에는 가둠뜨기 종이도 다수 존재한다. 더욱이 줄을 이용한 흘림뜨기는 1953년경 일본식 가둠 뜨기 도구를 새롭게 개량한 초지법으로 조선시대 제지법과 다르다. 이 초지법은 많은 양을 뜰 수 있다는 경제성 면에서 선호했지만 앞과 뒤의 종이 두께가 다른 관계로 홑지 두 장을 엇갈리게 놓아 두 장을 하나로 합해야만 만들어지는 불완전 방식이다. 제지법의 관점에서 보면 단점이다.

결국 한지의 특성은 완성품인 종이가 말한다. 현대 한지장이 만든 한지는 조선시대 종이 수준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수준이다. 특히 밀도가 크게 낮으며 새롭게 종이 표면에 남겨진 발 지지대 자국으로 표면이 균질하지 못하다. 백색도는 낮고 크기도 작다. 이것은 많은 이야기를 시사하고 있지만 특히 원료처리와 도구 그리고 초지법이 달랐음을 반증한다.  

조선시대의 종이 한 장조차 재현하는 기술력이 없는 현실에서 도대체 무엇을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한다는 말인가. 지금은 문화유산의 실체만 있을 뿐 과거의 도구와 제지술은 사라졌다. 그래서 전통한지는 긴급 보호가 필요한 종목이다. 시급히 원형 기술을 찾아 복원하지 않으면 사라질 위험에 놓여있다. 세계유산 지정에 앞서 전통한지 기술부터 복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등재운동단체와 이에 편승하는 중앙부처, 지자체는 유네스코 지정을 위해 온갖 술수와 편법 그리고 세몰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필자는 지정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정부와 관계부처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전통한지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신용장도 없으면서 세계저명 미술관 미술품 수리와 복원에 한지가 쓰인다는 거짓 정보 등을 언제까지 언론이 받아쓰게 할 것인가? 거짓은 아무리 덮어도 거짓이고, 따라서 영원히 거짓이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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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석 #문화마주보기 #전통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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