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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 5 - 분노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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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붕 도서출판 파자마 대표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 ”<하략>

하마스의 도발을 명분 삼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이 도를 넘었다. 인종청소 수준의 무차별 학살로 이미 34.000여 명이 죽었다. 그중에는 수만 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이런 만행 뒷배에는 미국이 있다. 무차별 학살에 대해 입으로는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원조는 여전히 수조 원에 이르고 있다. 지배층 상당수가 유대인이어서인지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활동과 유엔 안전보장이사국들의 각종 합리적인 휴전결의안을 거부권을 통해 철저히 막고 있다. 그런 미국이 세계 인권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어불성설의 극치다. 원칙대로라면 핵 개발과 팔레스타인 탄압과 같은 그간 행위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유엔의 제재를 수백 번 받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유엔의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다행인 것은 미국 청년 대학생들이 이에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는 바람에 상호 보복으로 중동 전체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가는 내려올 줄 모른다. 그 덕분에 우리 국민은 영문도 모른 채 고환율과 고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입장은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메이저 언론도 마찬가지다. 조국 일가의 표창장 위조에 대해서는 수개월 동안 지치지도 않고 떠들더니 정작 국민의 삶을 그늘지게 한 이스라엘의 행태에 대해서는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꿀 먹은 벙어리다. 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지 모르겠다. 소위 진보단체나 입 바른 대학생들도 공정, 동물권, 여성 인권 등에 대해서는 그토록 목소리 높이면서 정작 이스라엘의 학살에 대해서는 역시 큰 반응이 없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동조하는가? 힘없는 팔레스타인은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 입장을 바꿔, 조선 사람이 일제에 의해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 속에 무참히 학살당해도 좋단 말인가? 판다 한 마리 중국에 보내는 것 가지고 떠들썩한 방송국들이나 울고불고하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시체를 보고 울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봉쇄로 굶어 죽는다고 호소하는 가자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국내로 돌아보면, 일부 의사 집단의 태업이 3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대해 사람들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지만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화물자동차 파업에는 그토록 강하게 린치를 가하던 정부와 언론이 정작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사의 집단행동에는 미적지근하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자는 일정해야 자로서 기능을 한다. 잣대의 눈금이 오락가락하면 그건 자가 아니다. 고무줄은 자가 절대 될 수 없다. 침묵은 죄다. 우리의 침묵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제는 분노해야 한다. 분노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를 개돼지로 취급할 것이다. 분노는 힘이고 거대한 파도다. 파도가 쳐야 바다가 살고 만 생명이 산다. 우리는 대체 어떤 일이어야만 분개하는가?

/문상붕 도서출판 파자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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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붕 #새벽메아리 #발칙한 상상 #이스라엘 #김수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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