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미술관의 문턱 넘기

image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어려서 아빠가 손에 쥐어 준 크레파스와 색연필은 내 놀이기구였고 장난감이었다. 일터로 나간 엄마의 빈자리에 자연스레 아빠의 화실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가장 가깝게 보고 만지고 익숙한 것이 그림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 근처에는 유휴열미술관이 있다. 1987년 유휴열 작가(서양화가)가 작업실이 필요해 이곳에 터를 잡았고 2020년 4월, 화실 옆 기존 갤러리 건물을 개조하여 유휴열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였다. 그림과는 무관하게 빙빙 떠돌다 고향에 온 느낌으로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4년 동안, 많은 작가와 전시회를 마주하며 작가와 관람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느낀 점이 많다. 

작품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는데 무심코 들어왔다가 미술관임을 알고 어색해하거나 멈칫거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고 자주 들었던 말은 “그림을 볼 줄 몰라서요” 이다.

미술은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렵고 생소하며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를 떠올리기는 쉬워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발걸음이 오래 머물고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유명하니 당연히 훌륭한 작품일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경험과 배경에 따라 미술 작품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좋은 시 한 구절을 읽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색감이나 터치 혹은 전체적인 조화가 편안하다면 그게 바로 좋은 작품이 아닐까. 또한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일까 상상해보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해진 답도 없고 그 답은 내가 만들기에 달려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는 재미를 스스로 찾았으면 한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들 덕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르도 다양하고 그 수도 넘쳐난다. 어떤 스타일의 작품이 나와 맞을지는 직접 내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봐야 알 수 있다. 때로는 작품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기억들을 상기시켜 색다른 즐거움을 줄 때도 있다. 살면서 경험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감정들을 작품을 통해 만난다면, 그 시간들이 축적되어 어느 순간 내 삶이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은퇴 후 혹은 여가시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그림이라고 대답하는 분이 많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이색적인 전시, 체험 프로그램이나 교양 강좌,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 해설(도슨트)도 있고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다. 파리나 런던, 뉴욕 등 여행을 가면 평소 미술관과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꼭 들르는 곳이 미술관이다. 그곳은 오랜 시간을 통해 쌓아온 역사와 전통이 있고 흔히 말하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예술이, 미술이 생활 속에 함께 녹아 살아가는 분위기가 부럽다. 

언론에서는 미술 작품이 투자 수단이 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고, 대규모 아트페어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판매액이 얼마라고 보도하지만 실상 미술 저변은 여전히 찬 바람이 분다. 특히 우리 지역은 미술 학과, 학생들도 줄어들어 젊은 작가들도 많지 않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순수미술을 고집하는 그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림 그리는 것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낭만적이었던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은 아득하다. 되돌아보면 내 집 거실에 그림 한 점 걸려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미술관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유가림 관장은 2020년 4월부터 유휴열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국회 초당적 협력 요청... “단결과 연대에 나라 운명 달려”

국회·정당인공태양(핵융합)이 뭐길래..." 에너지 패권의 핵심”

국회·정당“제2중앙경찰학교 부지 남원으로”

정치일반전북도청은 국·과장부터 AI로 일한다…‘생성형 행정혁신’ 첫 발

정치일반전북 ‘차세대 동물의약품 특구’ 후보 선정…동물헬스케어 산업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