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한때 전국민의 희망가로 불렸던 노래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장에서다. 이 자리에는 태진아, 설운도, 김성환, 박상철, 강진, 김수찬 등 연예인 70여 명이 참석해 합창했다. 이 노래는 산업화와 함께 유신정권으로 숨막히던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 준 송대관의 대표 곡중 하나다.
정읍 출신인 송대관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응급실을 찾았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79세. 지난해 10월 군산 출신 탤런트 김수미가 75세로 떠난데 이은 비보다. 송대관은 할아버지가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해 징역을 살고 아버지도 6·25때 실종되는 바람에 어렵게 컸다. 어린시절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야 할만큼 가난했다. 초등학교를 4군데 다녔고 전주 영생고에 진학해서는 야간으로 옮겨 신문 배달과 이발사 보조노릇을 했다.
하지만 끼가 넘쳐 고교때 KBS 전주방송국 전속가수로 발을 딛게 되고 서울로 올라가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직접 가사를 쓴 해뜰날(1975)이 쨍하고 떴으나 칼러TV 시대 개막으로 그것도 잠깐이었다. 1980년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이민갔다 향수병을 이기지 못해 돌아왔다. 귀국 후 정 때문에(1989), 차표 한 장(1992), 네박자(1998), 유행가(2003), 분위기 좋고(2009)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 등으로 빚더미에 올라앉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석달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김수미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MBC 탤런트로 입사한 후 1980년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 일용엄니로 출연했다. 당시 나이 32세였다. 22년 2개월간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수다스러운 시골 할머니 역할을 맡아 국민배우로 각인되었다. 또 걸쭉한 입담의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와 뛰어난 요리솜씨로 유명했다.
이들의 특징은 고향사랑이 남다른 점이다. 고향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왔다. 2022년에는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를 위해 전라북도 명예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 송대관은 방송가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했다. 한번은 방송국 간부가 표준말을 쓰라고 권유하자 “현철(부산 출신)이가 서울 말 쓰면 나도 쓸께”하면서 넘겼다. 또 단풍철에 내장산 관광지를 알리는 ‘정읍 송대관 가요제’를 열기도 했다.
김수미는 1990년대 말, 전북 프로야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모기업 부도로 해체 위기에 놓이자 후원회장을 맡아 발벗고 나섰다. 최불암, 유인촌, 고두심, 유승준 등 정상급 연예인을 동원해 쌍방울 살리기 자선공연을 했고 ‘1인 1만원 구좌갖기 운동’을 벌였다. 이밖에도 박근형(정읍), 김성환(군산), 현숙(김제), 진성(부안), 김용임(익산), 임현식(순창), 이문식(순창), 이경실(군산), 박명수(군산), 김태연(부안)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북의 큰 자산이다.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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