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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민 한승헌에 대한 말말말]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자 따뜻한 유머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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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종로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산민포럼' 발족식.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 3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추모 모임인 ‘산민포럼’의 발족식은 단순한 추도식이 아닌 고인이 남긴 가치와 유산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행사 2부인 이야기 마당은 이러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참석자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었다. 이날 산민 선생과 인연을 회상하며 그를 발자취를 공유한 인사들의 말을 정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한승헌 변호사님과 인연은 제가 변호사가 되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간다. 대학 4학년 때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어 서대문 구치소에서 감방을 배정받았던 첫날, 한순간 낯선 세계로 굴러 떨어진 캄캄절벽 같았던 순간, 옆 감방에서 교도관을 통해 새 내의 한 벌을 보내주신 분이 계셨는데 바로 한 변호사님이었다. 손꼽아보니 한 변호사님과의 특별한 인연이 50년 가까이 됐다. 산민포럼이 그의 정신과 가치를 온전히 계승할 수 있도록 응원한다.” 

 

△장영달 전 국회의원(포럼 공동대표)

“한승헌 선생은 어두운 세상 속에서 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사람이었다.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이 한 선생을 웃겼단 이야기는 들은 적 없지만, 반대로 한 선생이 이주일 선생을 웃게 만든 일화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시련을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알았고, 다음 세대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했다.”

 

△유시춘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이사장

“저와 한승헌 선생은 삼촌과 조카같은 사이였다. 그는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인 고도의 지적 유희를 즐길 줄 알았다. 특히 시련과 억압과 고초에 처했을 때 이것을 유머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을 삶에서 생생히 증언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분을 생각하면 저 역시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공익과 정의, 진실을 실천하고자 다짐하게 된다.”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저는 진안 출신 고향 후배다. 선생님은 고향 사랑이 지극했다.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과 진안의 교류를 이끌었고, ‘우국여가(憂國如家, 나라 걱정을 내 집 걱정처럼 하라)’라는 친필 글씨를 남겨 그게 지금 진안 안천면사무소에 걸려 있다. 모교인 안천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책을 나눠주고 격려도 하셨다. 또 용담댐으로 수몰된 고향 근처 길을 ‘한승헌로’로 만들고 친필 글씨를 새겼다. 지난해부터 ‘한승헌 기념회’를 창립해 매년 추모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부터는 전북대에서 정기적으로 기념식을 열 계획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함광남 산민회 회장 

“산민 선생님의 삶에서 가난은 뗄 수 없는 부분이다. 1976년 필화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변호사 자격을 잃었고, 1983년 복권됐다. 청와대에서 재벌회사 고문 자리를 여러 개 제안했지만, ‘당신들이 내 입을 막으려 하지 말라. 옳고 바르게 하면 된다’며 거절하셨다. 그 뒤에도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됐다. 그러나 변호사님은 늘 ‘변호사는 배고픔은 면할 수 있지만 부자는 될 수 없다’, ‘차라리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정의롭지 못한 재물은 철저히 멀리하셨다. 그래서 평생 가난을 옆에 두셨지만, 그게 바로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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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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