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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주보기] 한 관찰사의 믿음이 전해준 선물

장진아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1846년 병오년의 일이다. 전라도 관찰사 이시재는 덕진연못에 승금정과 취소정을 짓고 낙성연을 열어 도내 수령과 시인, 가객을 불러 모았다. 참석자들은 신분과 지위를 내려놓고 모두 시 한 수씩을 지었다. 1990년대에 공개돼 관심을 모았던 <승금정시회화첩>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날 시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참석자들의 시를 담고, 이시재가 서문을 쓴 <승금정시회화첩>은 잠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었지만, 곧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러던 <승금정시회화첩>이 다시 모습을 보인 것은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건희 기증품을 공개하면서다.

국립전주박물관은 2024년 이 작품을 전시하고, 전주문화원과 함께 <승금정시회화첩>에 대한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해 말 국립전주박물관과 전주문화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학술총서 <승금정시회화첩>이 그 성과물이다.

소장품을 조사하고 학술적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일은 박물관의 중요한 역할이다. <승금정시회화첩> 연구는 작품 자체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자료를 연계해 분석하는 일을 더했다. 승금정 시회와 화첩 제작의 배경, 그리고 그 의미를 통해 당시 전주 지역의 문화사를 밝히고자 했다.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승금정시회화첩> 이면에 숨어 있던 조력자, 오상수와 이삼만의 발견이다.

오상수는 전주 출신으로 <풍요삼선>에 작품을 올린 시인이다. 그의 문집 <유사집>에 실린 <승금정화첩서>를 보면, 이시재가 시회를 기념하는 화첩을 만들면서 오상수에게 서문을 지으라 했다는 내용이 있다. 흥미롭게도 <승금정화첩서>에 실린 오상수의 서문은 <승금정시회화첩>에 실린 이시재의 서문과 다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최종적으로는 이시재의 서문이 수록된 것이다. 장황 또한 제목에 쓰인 ‘화첩’이 아니라 화권(두루마리)으로 바뀌었는데, <승금정시회화첩>의 글씨는 오상수의 필치에 가까워 화첩의 제작 과정에서 그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방증한다.

또 하나 주목할 문헌은 2020년 공개된 『풍패집록』이다. 이 자료는 전주 사람 채경묵이 19세기 말에 간행한 것이다. 승금정 시회에서 지어진 시의 현판과 승금정·취소정의 상량문 등 <승금정시회화첩>과 관련된 글들이 포함돼 있다. 승금정 상량문은 이시재가 짓고 이삼만이 글씨를 썼다는 것, 취소정 상량문을 이만용이 지었다는 기록 등은 승금정 시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나중에 덧붙여진 기록이지만, 이만용이 지은 취소정 상량문이 사실은 오상수의 대작이라는 내용은 흥미롭다. 정확한 사실은 앞으로 더해질 새로운 자료와 후속 연구로 밝혀지겠지만, 관찰사가 추진한 문예 사업에 오상수와 서예가 이삼만 등 당시 전주 지역에서 추앙받던 문사들이 큰 역할을 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승금정 시회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었다. 관찰사 이시재는 이를 발전시켜 문예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후향시사를 결성했다. 여기에 자금을 출연하고 시사의 운영을 지역 문사들에게 맡겼다. 그는 <승금정>이라는 건물은 사라지더라도, 그곳에서 이룬 문예적 성과는 남아 그 아름다움과 풍류가 후세에 전해질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승금정시회화첩>은 한 관찰사의 믿음이 이뤄낸 귀한 결실이다.다시 병오년을 맞았다. 새해의 시작점에서, 우리 박물관은 무엇으로, 또 어떻게 지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이 깊어진다.

장진아 학예연구실장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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