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탐방”
[⑧ 효녀 심청과 실크로드] 효녀 심청, 한·중 해로를 건너다심청 설화, 백제와 중국 진나라 간의 교류 반영 / 한국 최초 관음도량 세운 실크로드 개척자 역할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5.04  / 최종수정 : 2017.05.04  19:33:47
   
▲ 곡성 심청상과 관음사.

장님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300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연꽃에 실려 세상으로 되돌아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효녀 심청 이야기는 실크로드와 관련이 있다. 효녀 심청과 실크로드,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심청 설화가 탄생했던 시기는 백제가 이웃 진(晉)나라와 교류하던 때로 심청이 공양미 300석을 받고 간 곳은 인당수 속 용궁이 아니라 중국의 대표적인 관음성지이자 해양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절강성 보타산(普陀山) 부근 심가문(沈家門)이었다. 현재 중국 절강성 심가문에는 심청을 기리는 사당인 심원(沈院)이 세워져 있다. 효녀 심청과 관음 그리고 실크로드에 관한 이야기를 탐색한다.

곡성 관음사 연기설화

심청전의 원형 설화 가운데 국문학계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은 〈관음사 연기설화 원홍장 이야기〉이다. 심청의 원래 이름인 효녀 원홍장(元洪莊)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장님인 원봉사가 일찍이 부인과 사별하고 홍장이라는 어린 딸과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원봉사는 길에서 성공(性空)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성공은 원봉사에게 절을 하면서 ‘전날 밤 꿈에 부처님께서 내일 아침에 길에서 만나는 장님이 너를 위해 큰 불사를 해줄 것이다’하였다고 하자, 원봉사는 ‘집에는 곡식 한 톨 없지만 어린 딸 하나가 있으니 사찰을 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바치겠다’고 하였다. 그때 홍장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홍장은 애통해하며 아버지께 하직하고 성공 스님을 따라나섰다. 성공 스님은 길을 가다 바다를 바라보고 쉬던 중, 중국 진나라 사신을 만나 공양미 300석을 받고 원홍장을 사신에게 인계하였다. 원홍장은 사신을 따라가 진나라에 가 황후가 되었다. 황후는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황후 홍장은 고향과 장님 아버지를 잊을 수 없어 관음보살상을 만들어 고국에 보내며 말하길, 이 관음상을 실은 배가 표류하거든 멈추는 곳에 모시도록 하여라’라고 지시하였다.

홍장이 보낸 관음상을 실은 배가 표류하다 멈춘 곳은 낙안포 바닷가였다. 이튿날 성덕이라는 아가씨가 낙안포 바닷가에서 한 척의 배를 발견하고 다가와 멈추었다. 성덕은 배 위에 금빛 관음상이 있는 것을 보고 몸을 굽혀 예배한 다음 등에 업으니 새털처럼 가벼웠다. 성덕은 열하루를 걸어 지금의 곡성 관음사 부근에 이르니 새털처럼 가벼웠던 관음상이 태산처럼 무거워져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음상을 봉안하고 절을 지어 성덕산 관음사라 부르게 되었다.

성덕산 관음사 설화는 세 가지 중요한 점을 담고 있다. 첫째, 심청의 본명은 원홍장이었다. 둘째, 심청은 중국 사신에게 공양미 300석을 받고 팔려가 진나라로 가 황후가 되었다. 셋째, 고국에 관음상을 보내 백제 최초의 사찰이자 한국 최초의 관음 도량인 관음사가 세워졌다. 그런데 성덕산 관음사 설화는 다음 몇 가지 점을 의문으로 남겨두고 있다. 첫째, 효녀 원홍장은 어떻게 심청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가? 둘째, 심청은 한국을 떠나 중국 진나라 어디에 도착해 살았는가? 셋째, 심청은 왜 장님 아버지를 위해 관음상을 보냈는가? 이 세 가지 수수께끼는 중국 절강성 보타산 부근에 있는 심청 사당 ‘심원(沈院)’ 이야기를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보타산 ‘심가문(沈家門)’ 설화

   
▲ 중국 관음성지 보타산의 관음보살상.

심청 사당 ‘심원(沈院)’은 중국의 대표적인 관음성지인 보타산(普陀山) 부근 심가문(沈家門)에 있다. 심가문은 성이 심씨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오늘날도 많은 심씨가 이곳에 살고 있다. 심원은 심청을 기리는 심덕정사(沈德精舍)와 효녀관, 심청의 배우자였던 심국공(沈國公)의 거처인 국공청(國公廳), 작은 호수 옆 정자인 박아청(博雅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청 사당을 건립할 정도로 효녀 심청에 대해 칭찬이 자자했던 심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심청 이야기는 이렇다.

백제의 원홍장이란 어린 효녀는 장님 아버지의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성공 스님의 사찰에 시주되었다. 성공 스님은 백제와 무역 거래를 하고 있던 절강성 보타섬의 부자 상인인 심국공에게 공양미 300석을 받고 팔았다. 심국공은 홍장을 자신의 고향인 심가문으로 데리고 간 후 심청으로 이름을 고쳤다. 심청은 중국에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고국의 장님 아버지를 잊을 수 없었다. 심청은 부친을 위해 중국 관음성지 보타산의 관음상을 한국으로 보냈고, 그 공덕으로 장님 아버지는 눈을 떴다. 한국에 보낸 관음상을 모신 사찰이 바로 곡성 관음사다.

한·중 심청 설화 속 역사적 사실

흔히 소설은 삼실허칠(三實七虛)이라 한다. 즉 소설은 역사적 사실은 30%, 나머지 70%는 허구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국과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심청 이야기는 전설인 탓에 차이가 있지만, 다음 몇 가지 점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첫째, 심청의 원래 이름은 원홍장이었고, 중국 심씨 집성촌에 시집을 가 심청으로 개명하였다.

둘째, 심가문은 현재 절강성 주산(舟山)시의 한 동네 이름으로, 평창동이나 성북동에 비길만한 부촌이다. 공양미 300석은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원이 되는데, 심청이 시집간 심국공 집안은 이 정도를 지급할만한 부잣집이었다.

셋째, 심청이 배를 타고 백제에서 중국으로 간 곳은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 항구 도시인 영파(寧波)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명주(明州)로 불렸던 영파는 현재도 시내 중심가에 고대 한국 상인들이 머물렀던 고려관이 남아 있고, 보타산에는 장보고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 만큼 한중 해로의 주요 항구였다.

넷째, 심가문은 중국 절강성 북쪽 바다에 위치한 중국 불교 4대 명산 보타산 옆에 있다. 인도 전설에 의하면, 관음보살이 사는 곳은 남인도의 포탈라카(potalaka)인데 이를 한자로 음역하면 보타락가(普陀洛迦)가 된다. 관음보살의 중국 거주지를 뜻하는 보타산은 바로 보타락가에서 온 말이다. 관음성지 보타산 부근에 살았던 심청은 관세음보살상을 자주 찾았고, 한국에 장님 아버지를 위해 관음상을 보냈던 것이다.

관음을 모시는 사찰은 인도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모두 해안가에 있다. 내륙에 위치한 곡성 관음사의 심청 이야기는 백제 시절 한중 해로의 구체적인 항로를 알려주는 한편 심청이 백제 최초의 사찰이자 한국 최초의 관음도량을 세운 해상 실크로드의 개척자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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