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개막한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소리문화의전당에서 다음달 19일까지 계속된다. 한·중·일, 러시아 등 17개국에서 참여한 183명의 작품이 진한 묵향을 뿜어내는 ‘서론서예전’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서(書)’의 역(力), 기(氣), 도(道), 예(藝)를 구현한 자유로운 창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주최측은 서예의 본질적 예술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 서예가의 다양한 경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한다. 명사서예전과 생활서예전 전시에는 122명의 국내외 일반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고 서예 사랑을 뽐낸다. 이 밖에 전각과 서각의 어울림전 등 다양한 서예 관련 행사가 진행되면서 전주의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 서예비엔날레 주제는 ‘순수와 응용’이다. 이런 주제의식에 조금 더 어울리는 대표작품으로 전진원 작가의 서론서예전 출품작 ‘우세남 필수론 구(虞世南 筆隨論 句)’가 선정됐다. 중국 당나라 초기 해서(楷書)의 대가인 우세남(虞世南)이 쓴 <필수론(筆隨論)> 의 한 구절을 쓴 것이다. 해서체가 아닌 초서체로 쓰여진 작품에 담긴 구는 ‘字雖有質(자수유질), 跡本無爲(적본무위), 稟陰陽而動靜(품음양이동정), 體萬物以成形(체만물이성형), 達性通變(달성통변), 其常不主(기상부주). 故知書道玄妙(고지서도현묘), 必資神過(필자신과), 不可以力求也(불가이력구야).’ 서예란 음양의 원리로부터 율동을 파악하고 자연만물의 변화로부터 형상을 얻어야 하는 것으로, 글자의 모양을 그리는 데에 힘을 기울여서는 서예의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는 의미다. 필수론(筆隨論)>
이처럼 해서로 쓰여지면 좋을 듯한 작품이 초서체로 쓰여진 것처럼 이번 서론 서예전 출품작은 초서체가 많다. 그야말로 일필휘지한 초서가 주류다.
그런 가운데 홍일점 해서 작품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원 원장의 격제구로(格制俱老)다. 이 말의 원전은 중국 북송 유도순(劉道醇)이 쓴 ‘성조명화평(聖朝名畵評)’이다. 그가 내세운 그림을 이해하는 비결은 육요인데, 기운겸력(氣韻兼力), 격제구로(格制俱老), 변이합리(變異合理), 채회유택(彩繪有澤), 거래자연(去來自然), 사학사단(師學舍短)이다. 격제구로는 격식과 품격, 체제, 절제가 완숙해야 함을 이른다. 해서는 전서, 예서, 행서, 초서 등 한자 서체 중에서 가장 바탕이라고 한다. 해(楷)는 본보기를 뜻한다. 격제구로를 해서체로 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만 하다. 순수한 격식과 품격, 체제가 잘 갖춰졌을 때 자연스럽게 응용이 나올 것이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