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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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은 콘텐츠다] 평화 땐 교류 나들목·전쟁 땐 요충지 활용 '이야기 무궁무진'금강하구 쇠락한 포구 저마다 간직한 사연들 / 스토리텔링 무한 보고 수학여행 답사 줄잇는 일제 수탈현장 내항에 천혜 관광자원 접목을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11.07  / 최종수정 : 2017.11.07  23:36:01
   
▲ 째보 선창 앞 민야암 등대.
 

항구를 노래한 유행가가 있는가 하면 항구에 관한 사연들도 많다. 인생을 항해하는 배로 비유하며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의 이별의 정을 나누는 장소를 항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군산항은 일반적 항구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 보다는 자식 돌보듯 소출한 쌀을 가차 없이 수탈당했던,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군산항을 이제는 과거의 회한에만 얽매여 있지 말고 콘텐츠화해 역사교육의 장소로, 반성적 사고를 동반한 힐링의 장소로 활용 하자는 것이다.

△ 세계와 전북의 연결고리, 군산항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어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은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의 탁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으로, 군산의 지정학적 위치를 설명하기에 매우 적절한 내용이다.

군산은 서해 중남부지역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금강이 남으로는 만경강이 흐르는 사이에 반도형 들판이 서해에 맞닿아 있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북으로는 우리나라 3대 강 중에 하나인 금강이 우리 군산을 끼고 흘러 바다에 이른다. 그 금강 줄기에는 백제시대의 제2·3 수도가 있었다. 그러므로 군산은 평화시에는 물류와 문화 교류의 나들목 역할을 했고, 전쟁시에는 요충지가 되었던 곳이다.

강가에는 배가 닿기 좋은 포구가 있어 상권이 활발하게 형성 됐었다. 그래서 고려시대는 진포라고 불렀다. 그 강 줄기에 나리포구, 서시포구, 사옥포, 궁포, 경포(서래포구), 죽성포(째보선창)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군산의 내항은 수탈의 창구였다. 쌀을 빼앗아 가기 좋은 구조로 강둑에 축대를 쌓고 밀썰물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부잔교를 만들었다.

1976년에는 외항의 건설로 본격적으로 세계로 연결 될 수 있는 역할을 확보하게 되었다. 현재의 비응항과 신시도항에 이르기까지 과거에서 미래로 연결되어지는 군산항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각해 보려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 바람을 가르는 금강둑·생명력 넘치는 탁류

“아스라이 강 끝에 햇살이 퍼지면, 산자락은 봄기운에 들뜨고 강 둔덕 풀섶엔 유채꽃 무리들이 철렁철렁 강물박자로 춤춘다. 강바람 마주하며 사뿐 사뿐 걷다 보면, 금강하구 반가운 갯 내음이 가득하다. 녹슨 작은배가 옛 영화를 꿈꿀 때, 물오리 세 마리 한가로이 노닥이고, 강둑 위 금단추 같은 민들레가 오늘을 노래하네.”

   
▲ 공주산 앞 나리포구의 흔적.

지난 봄 공주산 옆 나리포구에서부터 내항까지 금강둑을 따라 걸으면서 필자가 적었던 감상글이다.

세월이 빨라 벌써 늦가을이다. 며칠 전 금강 하구둑을 다시 걸었다. 안개가 낀 것도 아닌데 먼 산은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희미하다. 강물은 가을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인다. 강둑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여전히 갯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채만식 문학관을 막 지나서 내항을 향해 걷다보면 군산을 잇는 개통을 앞 둔 동백대교의 라인과 오래전 문을 닫고 초식 공룡의 목처럼 우뚝 솟은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묘한 어우러짐을 볼 수 있다. 강물의 색깔은 갯벌이 휘돌아 흐르는 탁류이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바다와 강이 만나 만들어진 생명력 넘치는 탁류이다. 그곳에 저녁노을이라도 질 때면 불타오르는 붉고 금빛 나는 하늘이 장관을 이루어 보는 사람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LA에 살던 필자가 아는 이는 군산 내항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는 발길을 떼지 못하며 그 아름다움에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군산 내항 길은 걷는 것 자체로서 힐링이 되는 콘텐츠 공간이다.

△ 금강하구 포구마다 깃든 사연들

군산항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공주산 아래의 나리포구엔 아직도 작은 배가 묶여있다. 나리포구가 언제부터 포구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임피현 산천조에는 “공주산은 현의 북쪽 13리 약 5km에 있는데 전하는 말에 공주로부터 떨어져나왔기에 이름한다고 한다. 공주산 밑이 진포인데 민가가 즐비하고 배부리는 것을 상업으로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초에도 상당한 규모의 어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산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나포를 거쳐 강경으로 올라가는 항로상의 경유지가 되었다. 해방이후 군산동부어판장 즉 째보선창에 어협조합이 만들어지면서 객주들의 영업자체가 불법이 되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가 한국전쟁을 겪으며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이처럼 금강하구에 있던 포구들은 그 외에도 서시포구, 궁포, 경포(서래포), 죽성포(째보선창)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포구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또는 갯벌이 쌓여 큰 배가 들어오지 못하는 자연현상 등으로 포구의 기능을 잃고 쇠락한 채로 누워있다.

그러나 금강하구에 포구마다 깃든 사연은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경포는 서래, 슬애 포구라고도 불리웠으며 초가집이 가득찬 어촌마을이었다. ‘슬애’란 ‘서래’의 군산식 발음인데 서울에 가는 포구라는 뜻이다. 슬애를 한문으로 기록하려니 ‘서울경(京)에 포구포(浦)를 사용하여 경포라 부른 것이다. 경포에는 경장시라는 오일장이 열렸다. 서래장터에서 호남최초의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삶이 수탈만 당했던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저항도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는 장소이다.

대나무가 많아서 죽성포구라고도 불린 째보선창. 이는 물길이 째지듯 육지를 파고 든 모습 땜에 또는 선창 객주가 실재 째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일제는 금강 줄기에 있는 조선민족 상권인 강경상권을 축소시키려고 계획적으로 째보선창을 활성화시킨다. 소설 탁류 속 주인공 정주사가 착지한 곳이기도 하다. 째보선창이 번창하면서 3.1만세 운동의 집결지인 경포 옆에 있는 서래장도 서서히 문을 닫게 된다. 당시엔 만선의 고깃배 출어를 돕는 객주들 나무장수, 물장수, 떡장수 등 째보선창 언저리가 발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렸다. 지금은 주인을 잃은 고깃배 붉게 녹슨 닻 수북한 어상자들 쓸쓸한 민야암 등대 넘어로 철공소의 쇠망치 소리만 그 정적을 깨고 있다.

필자는 째보선창에 있는 동부어판장 옥상을 해질녘에 올라간 적이 있다. 넓게 펼쳐진 갯벌과 함께 밤하늘 별빛의 아름다운 어울어짐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곳이다.

△ 이야기 많은 군산항, 항구적 기능도 살려야

   
  <문정현 ((사)아리울역사문화연구소 대표)>  

군산항을 근대항으로 개발한 것은 1905년 구한국정부에 의해 공사비 8만 6000원의 투자 7개년 계획으로 대형 부잔교 3기가 만들어지면서 부터이다. 1930년대부터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로 활용되었다. 해방 후부터 1960년대 이후 도시발전 정체로 인해 해망동의 수산물시장을 축조했다. 현재 내항의 모습은 개항 이전부터 현재까지 군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고 쇠퇴를 거듭해 왔다.

1979년 금강 하굿둑이 생긴 이래 토사가 쌓이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점점 잃어가면서 꼴깍꼴깍 수명이 다하고 예전의 군산항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외항으로 나가서 무역항과 여객선을 운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비응항에는 어선이 드나들고, 신시도에 새로운 외항을 건설 중에 있다.

내항은 이미 수탈의 현장으로 활용되었던 흔적들은 근대역사교육 장소로 활용되어 전국에 있는 수학 여행단들의 답사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을 살려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물과 썰물이 자연스럽게 콸콸거리며 소통이 되게 해야 한다. 소통되게 하기 위해서는 금강 하굿둑의 갑문을 열어서 해수유통을 하게 해야 한다. 백중사리와 장마 때만 빼고 평상시에는 꾸준하게 문을 열어놓고 민물과 바닷물의 유통이 콸콸거리게 하면 좋겠다. 갯벌로 조여진 목이 뻥 뚫어져서 뱀장어, 우어, 황복어 등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하게 하고, 강 하구로서 민물고기들이 산란을 하여 그것이 자라나 박시글거리며 찾아오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 또한 뱃길이 열려서 여객선이 드나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금강하구에 있는 포구와 지금의 내항과 외항 모두 군산항으로서 그 역할을 잘해왔지만 항구적 기능과 어항적 기능이 죽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군산항을 다시 살리는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금강은 천혜의 관광자원이고 금강하구에 집중되어 있는 군산항구는 콘텐츠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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