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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관과 남원
심수관과 남원
  • 김원용
  • 승인 2019.06.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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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선임기자

임진왜란·정유재란은 일본에서‘도자기 전쟁’으로 불린다. 자기 기술이 보잘 것 없었던 일본이 오늘날 도자기 선진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게 전쟁 중 조선 도공을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 중 일본 3대 도자기로 꼽히는‘사쓰마 도자기’의 원조가 정유재란(1597년) 때 남원에서 끌려간 도공 심당길이었다. 그의 자손은 현재 15대 심수관에 이르기까지 사쓰마 도기를 주도해왔다.

심수관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반세기 안팎이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시바 료타로가 1964년에 쓴‘고향을 잊을 수가 없소이다’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후 80년대 중반 KBS가 이를 극화하면서‘심수관가’의 ‘400년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쓰마 도자기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를 통해서다. 당시 출품했던 높이 1m 55㎝의 대화병은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1902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최고상을 받았다.

심수관가의 비밀을 풀며 모국 속으로 깊이 들어온 이는 14대 심수관(본명 심혜길, 심수관은 본명 대신 전대의 이름을 따르는 이 가문의 관습)이다. 그는 특히 전북에 각별한 정을 나타냈다. 1989년 전북도와 자신이 살고 있는 가고시마현간 우호협력이 체결되는 자리에 참석했던 그는 선대로부터 4백년 동안 품어왔던 꿈이 실현된 것 같다는 감회를 밝혔다. 그는 남원도자기 일본 전래 400주년을 맞은 1998년 남원에서 불씨를 가져갔으며, 그 불씨로 구운 첫 도자기를 남원시에 기탁했다.

남원시는 아픈 역사와 함께 이국에서 예술혼을 꽃 피운 심수관가를 기리며 그간 여러 이벤트와 기념사업들을 진행했다. 남원시는 2008년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고, 그의 뒤를 이은 아들 15대 심수관에게도 2011년 명예시민증을 줬다. 심수관 도예전시관을 만들고, 여기서 매년 국제도예캠프를 열고 있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고향 남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부르며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는‘오나리’노래탑이 역사적 아픔의 현장인 만인의총에 세워지기도 했다.

우리가 찾지 않았으나 조선 도예가의 후손임을 당당하게 내세우며 우리 곁으로 왔던 14대 심수관이 지난 16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도예의 종가 남원을 도예도시로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이 땅을 지킨 우리도 제대로 못한 일이다. 남원의 예술혼을 역사 속에서 끌어낸 고인을 잊지 말고 오래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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