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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 리더쉽’에서 배운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2019 경제전쟁
‘이성계 리더쉽’에서 배운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2019 경제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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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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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근 도의원
박용근 도의원

지난 2일 일본 아베 총리에 의해 단행된 ‘경제침략’으로 인해 한반도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격이 됐다. 왜 아베가 갑자기 한국에 경제침략을 단행했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의제를 정립해야 한다. 일본은 크게 한반도를 세 차례 침략했다. 1350년 경인년(경인왜구)이 처음이고 두 번째가 1592년에 벌어진 임진왜란이다. 1910년 한일병탄에 이어, 일본이 또다시 경제침략을 단행했다.

일본이 남북조시대로 갈라져 혼란한 시기, 지방 군벌들은 해적이 되어 고려와 원나라는 물론 대만, 필리핀, 베트남까지 진출하며 노략질을 펼치게 된다. 이를 왜구라 불렀다.

이들은 1350년 경인년에 고려에 본격적으로 출몰하게 됐는데 이를 경인왜구라 한다. 당시 기록에만 530여 차례 고려를 침공했다는 기록이 있고, 기록되지 않은 것을 합하면 1천회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변변한 수군이 없었던 고려는 이러한 왜구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다. 갑작스런 왜구의 침략에 고려는 당황했다.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방비책들이 상소됐는데, 크게 육방론과 해방론으로 나뉜다. 육방론은 고려에 수군이 없으니, 육지에서 왜구들을 물리치자는 책략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었다. 해방론은 해군을 키워 바다에서 직접 왜군을 무찔러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 장군은 함선 2천척과 10만 수군을 양성에 일본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최무선이다. 최무선은 일생을 마쳐 화약무기 개발에 몰두했고, 중국의 도움없이 고려 자력으로 신무기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최무선은 화약무기의 ‘첨단부품소재’인 염초 개발에 몰두했고, 군산에서 벌어진 진포대첩에서 왜적선 500척을 불사르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1380년 고려 장군 이성계는 남원 황산에서 왜구와 일대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때 이성계는 “겁나는 사람은 물러가라, 나는 적에게 죽을 것이다”며 돌격의 리더쉽으로, 고려 군사들을 이끌며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임진왜란 때도 선조는 왜구의 침략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경술국치(庚戌國恥) 때에는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기에 조선의 힘이 너무 약했다.

2019년 일본 경제침략에 대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아베를 비롯한 일본 국우세력의 침략의 목적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저지하고,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등극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당장의 외교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고, 장기적인 한일간 세력대결로 갈 공산이 커 보인다. 고려는 왜구의 침략을 극복하기 위해 수군을 강화했고, 독자적인 화약무기 개발을 통해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이성계는 자신이 앞장서는 솔선수범의 돌격정신을 통한 리더쉽으로 고려 군사들을 이끌었고, 이를 통해 황산대첩을 일구어 냈다. 이어 대마도정벌로 왜구 침략에 대해 끝장을 냈다.

첨단소재부품에 대한 국산화가 시급하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통해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고려때 군산과 남원에서 보여주었던 왜구 대응 전략이 오늘날에도 큰 교훈이 되길 기대해 본다. /박용근 칼럼(전북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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