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멸치 말고도 땅의 푸성귀가 온갖 해물과 만나 우려내는 국물맛의 조화를 설마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요.” "하여튼 국물들 좋아해요. 국에다 밥 말아먹는 민족이 온 세상에 또 있을까.” - 소설 '석류' 부분
읽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말 잔치에 박장대소하다가도, 죽은 여동생을 회고하는 어머니 얘기에 닿으면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소설가 최일남씨(73)의 열 세 번째 소설집 '석류'(현대문학). 2001년 이후에 발표한 7편 등 단편 8편을 묶은 '석류'는 감칠맛 나는 문체로 읽는 즐거움을 준다.
'속도'가 버리고 간 텁텁하고 맛깔 나는 우리 풍속과 정서를 자분자분 거두고 있는 이 책은 50~60년대가 배경인 단편들이 주를 이루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일상과 과거의 기억도 빼지 않았다. 1997년에 발표한 '아침에 웃다'는 서민 생활 풍속 중 가장 직접적이고 원색적인 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체적으로 작가특유의 해학과 감칠맛 나는 어법이 꿈틀댄다. 표제작인 '석류'는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한 세상 저쪽의 허물을 굽잡아 살짝 구슬리는 족족 밉지 않게 대드는' 입담으로 이뤄진 소설. 가난하고 배고팠을 시절 눈물겨운 정 나누기와 작가가 아름답게 세공해 되살린 구절로 우리말의 소중함과 풍요로움을 깨닫게 한다.
반세기하고도 한 해를 더해도 식지 않는 작가의 열정만으로도 '석류'를 씹을 때처럼 코끝이 알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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