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광풍…그래도 볼 영화는 본다
월드컵 열풍이 극장가에선 광풍이 됐다. 각본없는 드라마에 열광하며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래도 위기는 곧 기회가 되는 법. “월드컵 기간이라도 볼 영화들은 본다”며 개봉강행을 결정한 영화들이 있다. ‘비열한 거리’‘엑스맨-최후의 전쟁’‘크립’. 관객들 앞에 당당히 설만큼 흥행면에서 자신이 있다는 선언인 셈이다. 특히 ‘비열한 거리’와 ‘엑스맨…’는 한국영화-헐리우드영화간의 2라운드 흥행전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1라운드에서 참패한 한국영화계가 새로운 라운드에선 어떤 성적을 거둘지 궁금하다.
△비열한 거리(감독 유하/출연 조인성·남궁민·이보영/액션느와르)
고창출신인 유하 감독은 시쳇말로 ‘뜨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봐도 새롭고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이야기의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멀티플레이어’인 셈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말죽거리잔혹사’ 등 그의 영화에선 동시대 사람들의 심중을 꿰뚫는 관찰력과 행간을 통해 건네는 강렬한 메시지가 깃들여져 있다.
권상우·이정진 주연의 ‘말죽거리잔혹사’에서는 유신정권과 학교폭력의 함수관계를 대입시켜 ‘마초는 태어나는게 아니라 길러진다’는 폭력성의 탄생을 그렸다.
그리고 감독은 한발짝 더 나아간다. 그렇게 길러진 폭력성이 어떻게 전파되고 소비되는지를 따라간다. ‘비열한 거리’.
이래저래 ‘비열한 거리’는 ‘말죽거리잔혹사’의 확장판으로 보여진다. 배경을 학교가 아닌 조폭세계를 옮겼을 뿐, 물고물리는 생존전략과 폭력성을 진지하게 응시한다. 무엇보다 주인공은 비열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포식자이자, 희생양들이다. 조폭세계나, 일반인들의 세계나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는 일은 다반사다.
삼류 폭력조직의 행동대장격인 스물아홉살의 병두(조인성)는 별볼일 없는 건달이다. 병든 어머니와 두동생에 몇안되는 부하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오늘도 이를 악문다. 조직간의 싸움을 앞두고 승합차량안에서 두려움에 떠는가 하면, 보스에게 “좀더 챙겨주십시오”라고 사정했다 귀뺨을 맞는 처량한 신세다. 어느날 조직의 대부격인 건설업자 황회장(천호진)으로부터 ‘눈엣가시같은 검사를 처리해주고 평생 같이가자’고 은밀한 제의를 받는다. “성공하려면 딱 두가지만 알면돼, 자기한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란 당부와 함께.
병두는 위험하지만 지름길을 선택한다. 황회장의 오른팔이 된 병두는 당장 인생이 달라진다. 그러다 초등학교 동창인 영화감독지망생 민호(남궁민)과 첫사랑 현주(이보영)을 만난다.
영화는 천민자본주의에 노출된 ‘비열한’ 사회를 가감없이 담아낸다. 돈을 위해서라면 배신도 마다하지 않는 조폭들의 추악함은 물론 돈벌이수단으로 조폭을 앞세운 건설업자, 대박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폭친구를 배신하는 ‘먹물근성’까지, 영화속 세상은 온통 비열함이 난무한다. 그런 점에서 ‘비열한 거리’는 ‘또하나의’ 조폭영화가 아닌, ‘전혀 다른’ 조폭이야기다. 우리 내부의 조폭성과 근원적인 폭력성은 어디서 비롯되고, 어떻게 확대재생산되는 지를 묻는다. 제 목숨을 담보로 불빛으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허황된 욕망을 좇는 불안하고 서툴기 그지없는 청춘들의 비가(悲歌)이기도 하다. 얼핏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가 연상된다.
‘비열한 거리’는 싸움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날만큼 싸움장면의 연속이다. 이소룡의 환생을 보는듯한 ‘말죽거리잔혹사’의 옥상격투씬을 능가할 만큼 격렬하고 잔인하다. 그런 잔혹한 폭력장면은 관객들에게 볼거리와 연민의 시선을 엇갈리게 한다.
“유신시대를 살아온 때문인지 폭력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유하 감독은 “차기작도 폭력에 관한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독의 바람이 현실로 이뤄지면 ‘말죽거리잔혹사’-‘비열한 거리’에 이어 조폭 3부작이 탄생될 것같다. 18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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