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재(우석고 교사)
“남풍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소쩍새 울음소리 처량하구나. 달빛 아래 꽃들도 이미 꿈속에 들었는데 저 야래향만이 꽃향기를 뿜고 있네……” 중국 등려군이라는 가수의 ‘야래향’이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야래향이란 이름부터가 그렇고, 중국 여가수의 독특한 고음과 가락에서 신비롭고 애련한 동양적 낭만이 흐른다. 밤에 피어나는 향기라는 언어적 이미지로 인해 비련의 여인을 상징하기에 적합해서인지 ‘댄서의 순정’이라는 영화에서 문근영이 이 노래를 불렀고 그 후 야래향이란 꽃이 유행하게 되었다.
야래향은 그 이름처럼 밤에 향기를 뿜는 꽃이다. 남미 등 열대지방이 원산지인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기르고 있다. 난향처럼 은은하면서도 백합향기처럼 강한 맛이 있어 여름밤의 무더위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되는 꽃이다.
야래향(夜來香)― 비단 이 꽃만이 아니라 무릇 꽃향기는 밤공기를 타고 흐른다.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에 은은히 번지는 장미 향기를 맡고 잊었던 울타리의 넝쿨장미 존재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매화와 달을 함께 얘기하는 것도 밤이면 더욱 진해진 향기 때문이기도 하다.
낮이라 해서 꽃이 향기를 뿜지 않을 리 없는데 우리의 후각은 밤이 되어야 제대로 그 기능을 찾는 것 같다. 낮에는 소란하고 번잡한 일상에 묻혀서 향기를 맡지 못하는 게 아닐까. 힘들게 사는 사람은 살기 위해서, 여유롭게 사는 사람은 즐기기 위해서 모두 방방 떠 있다. 우리를 들뜨게 하는 것들, 그것에 사로잡히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에 초연한 이는 드물어 낮 세상은 갈수록 시끄럽기만 하다.
인간은 천혜의 오감(五感)을 갖고 있다. 그 감각들은 인간 삶의 원동력이다. 생존과 번식에서부터 풍요로운 정신적 삶에 이르기까지 이 다섯 가지 감각이 골고루 작용하고 있다. 이런 본능적 5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 거기에서 영적 능력인 제 6감이 형성된다는 말도 있다. 어쨌거나 어느 한 쪽 감각에 치우쳐 부화뇌동하는 것은 삶의 기본이 무너진 충격이다. 중심 없이 들떠 사는 세월은 한 순간에 먼지처럼 날아가 버린다.
동양화에서는 여백의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대상을 그린다 하고, 음악도 침묵을 말하기 위해 소리를 배치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그대로 본질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그동안 외쳐온 현상적 실존과 문명의 가치에 가려 정작 그 현상이 창조해내는 본질을 감지하는 능력은 무디어지고 있다. 여백과 침묵 속에 허무와 고통의 극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을 느낄 수 있는 제 6감이 있는가.
야래향(夜來香)― 한갓 댄서의 순정이나 비련의 여인을 연상시키는 관념적 언어의 이미지로서만 사랑 받지 않고 잊혀져가는 우리의 감각을 소생시키는 매체로 생명을 얻길 바란다.
/이세재(우석고 교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