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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감] 빈곤 女가장 홀로서기 돕는 '전북여성노동자회'

IMF때 쌀 쿠폰제 등 다양한 활동…올 금융위기 속 연리 2% 대출사업

전북 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한 전북 여성노동자회 회원들. (desk@jjan.kr)

전북 노동운동 불씨는 1985년 열악한 근무여건에 '뿔난' 여성들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도내엔 쌍방울, 태창, 백양 등 국내 굴지의 섬유기업이 몰려 있었다. 수출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4∼48시간 내내 풀가동된 여성들의 월급은 고작 9만8000원.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여성들이 주축이 돼 근로 조건 처우 개선을 외치며 민주노동조합 슬로건을 내걸고 적극 나서게 됐다. 가담한 여성들은 블랙 리스트에 올라 다른 현장에서도 취업이 안 됐지만, 꿋꿋했다. 이도 저도 안 될 바에야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5∼6년간 복직 투쟁에 나선 '태창 사건'은 그래서 유명해졌다.

 

'교도소에 갔더니 8시간 일하고, 8시간 자고, 8시간 일한다는 것을 처음 누렸다''자유가 억압되는 답답함은 있지만, 꿈같은 이야기를 여기 와서 경험해본다'는 우스갯소리가 공감을 얻던 시절이었다.

 

대규모 노동자 대투쟁은 1987년 울산이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됐다. 기계·조선 공장단지가 들어서자 남성들이 전면전을 치르기 위해 힘을 결집했기 때문. 굵직한 섬유공장들은 하강 국면에 들어섰고, 생계 자체를 꾸리기가 힘들어진 여성 활동가들이 하나 둘 빠지면서 등 지지기반이 약해지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유 업종에 종사하는 몇몇 여성 노동자들은 소모임 '푸른 굴레'를 꾸렸다. 이후 익산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전자·식품에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여성회'로 그 맥을 이어갔다. 아이 서넛을 들쳐 업고,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면서도 기꺼이 고통을 감수했던 것은 열정 때문이었다.

 

10년 후 박영숙 이금자 추영숙 허옥희씨 등을 주축으로 전북 여성노동자회가 결성됐다. 이어 터진 IMF 사태는 여성노동자회 활동가들에게 '일복'을 가져다 줬다. 경제난이 가정 파탄으로 이어져 무수한 여성 가장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 것. 이들은 여성가장실업대책본부를 결성해 쌀 쿠폰제, 의료 지원을 위한 '희망의 카드', 여성가장 희망 상담실, 평등의 전화와 고용평등사무실 등을 꾸려 빈곤 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했다.

 

올해 또다시 찾아온 제2의 IMF. 전북 여성노동자회는 최저생계비 대비 120~15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여성가장(실질적 여성가장 포함)을 대상으로 최고 500만원 대출을 하는 여성가장 긴급지원 캐쉬SOS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BS가 사회환원기금으로 내놓은 20억원을 기반으로 연리 2% 여성가장 대상 대출사업을 시행하는 것. 여성가장이 300만원을 대출받아 3년 분할 상환할 경우 1년 거치로 매달 8만6000원씩 갚고 있다. 자녀 또는 본인 학비와 의료비, 주거비 등으로 고생하는 여성가장들을 위한 사업이다.

 

허옥희 대표는 "최근엔 경력이 단절된 40∼50대 여성 가장들을 대상으로 간병·산모 도우미 등으로 여성들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차상위·차차상위에 해당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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