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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진경산수서 사실주의까지…'벽천 나상목의 미학언어' 출간

벽천 선생 서거 10주기 미공개 스케치作 500여점 수록

폭포(한국화 100인전 출품作 스케치, 1973) (desk@jjan.kr)

산수화가라면 벽천 나상목(1924~1999)이었다.

 

남화의 전통과 한국 진경산수화 전통을 현대적인 미감과 양식으로 탈바꿈시킨 독보적 존재.

 

'벽천 나상목류 산수화' 는 그가 폐암으로 생(生)을 마감한 순간까지 이어졌다.

 

벽천나상목의미학언어편찬위원회가 서거 벽천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미공개 스케치 작품 500여점을 수록한 작품집 「벽천 나상목의 미학언어」를 출간했다. 벽천의 아내 안용숙 여사와 8남매, 며느리, 사위, 제자들이 합심해 지난해부터 미공개된 스케치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재해석한 작업. 산천, 인물화, 동물, 식물 등으로 분류된 작품과 함께 그가 살아왔던 순간 순간도 기록됐다.

 

스케치에 대한 애착은 한국화가로서는 보기 드문 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산수화가가 실경을 바탕으로 하지 않아 관념적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적었다.

 

한국화가 송계일씨는 "벽천 선생 나름의 '신남화풍(남종문인화의 현대적 해석)'은 사실주의적 화풍에 근거한 스케치 때문이었다"며 "늘어진 소나무, 돌과 바위의 삼면법, 산과 물의 현장감 있는 표현은 스케치를 통한 그만의 논리적 시각이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전쟁 이듬해 전주로 피난왔던 묵로 이용우 화백과의 조우도 그의 화풍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묵로는 관념적인 산수화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산수화를 구축한 근대 한국 화단의 대가. 벽천은 묵로로부터 모사와 사생을 반복하고, 필력과 몰골법을 익히면서 자신만의 화법으로 재창조해 국전 출품 연속 4회 특선, 국전 추천작가, 국전 심사위원 등에 이르게 됐다.

 

벽천의 마음속 또다른 스승은 겸재 정선이었다. 겸재에 대한 존경의 핵심은 진경산수. 겸재가 관념 산수에서 벗어나 산과 물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닮고자 했다.

 

그는 중앙무대에 진출하지 않았다. 김제 출생인 그는 모교인 이리농림학교, 전주고등학교, 김제여고 미술교사에 이어 원광대 교수와 미술대학장·명예교수를 역임하면서 전북 화단의 발전 방향에 선구자적 고민을 해왔다. 한국화를 미술대학에서 처음 쓰도록 한 것도 그의 공로. 동양화를 하나의 장르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됐다.

 

벽천의 둘째 사위인 최종진 경운대 언론학 교수는 한때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길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최교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며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고 작품집에 적었다. 그리고 "아버님을 있게 한 땅, 활동할 수 있도록 배양의 힘을 준 고장에 대한 고마움과 애착이 아니었겠느냐"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서거 10주기 출간 기념 작품집 외에도 스케치 작품전 '벽천 나상목의 미학언어'(10월1일~25일 김제 벽골제 내 벽천미술관)를 갖는다. 미공개된 스케치 80여점과 벽천 선생의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

 

산수화의 거목으로 우뚝 섰던 그가 치열하게 해왔던 사생을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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