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0 06:49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전시·공연
일반기사

[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⑬음악 발명가 스트라빈스키

"나는 작곡가가 아니라 음악 발명가"…"음악창작, 끊임없는 학습·반복훈련으로 탄생"

하고 싶은 얘기는 알아듣게 하는 것이 소통의 근본이다. 많이 아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 어렵게 얘기해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면 많이 알아도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못한 셈이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작곡가 중에서 가장 인기있고 매력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여 큰 사랑을 받는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는 하고 싶은 얘기를 알아듣게 잘 한 음악가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 위촉수당, 저작권료, 공연 지휘의 수입으로도 잘 살 수 있었다. 하긴 그도 발레음악 <봄의 제전> 파리 초연 때는 작품에 대한 거친 항의와 소동으로 큰 좌절감을 맞보기도 했다. 31세때 일이다.

 

선사시대 러시아가 배경인 <봄의 제전> 은 기독교가 싫어하는 이교도 제전, 즉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에서 한 소녀를 희생양으로 하여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하는 음악, 생경한 리듬과 불협화음이 가득한 음악이었기에 큰 반발을 산 것이다. 러시아 민속선율을 차용하여 단순·투박한 박동으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원시주의 음악 <봄의 제전> 은 지금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의 하나이다.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창작관을 음악 뿐 아니라 <음악 시학> 이라는 그의 책에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창작관은 물론 다 다르다. 그중 하나인 20세기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 스트라빈스키의 창작관을 알아봄으로서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스트라빈스키는 소리들의 예술적 결합인 음악창작을 끊임없는 학습과 숙고와 계산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말러가 한 작품의 창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하다며 영감이나 신적인 재능을 강조한데 반해 스트라빈스키는 창작은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학습, 반복 훈련에 의해 탄생하는 창의라고 주장했다. 구두공이 구두를 만드는 것과 같이 매일 매일의 쉼 없는 작업에 의해 불멸의 작품이 완성된다고…, 바하, 하이든, 모차르트도 그와 같은 정성으로 그들의 작품을 작곡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긴 베스트셀러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창의적 글쓰기' 강의에서 자기는 매일 4시간 20분씩 글쓰기 연습을 해왔고, 하고 있고, 할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분야는 다르지만 두 창작가의 창작에 대한 의견은 같은 셈이다. 매일 매일의 규칙적인 글쓰기와 메모하는 습관이 창의력의 바탕이고 거듭되는 훈련을 통해서 상상력도 키워진다는 베르베르 얘기는 스트라빈스키의 창작관을 공감하게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을 작곡가,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작곡가, 예술가의 호칭에는 영감에 의지하는 환상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공예적으로 정성껏 작업해야 한다는 창작 자세를 견지하는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가는 길에서 국경 검문소 초병이 여권 직업란에 적힌 내용대로 작곡가냐고 묻자 "나는 작곡가가 아니라 음악 발명가"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20세기 음악의 시작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스트라빈스키! 그는 음악은 새의 노래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있고 창조적인 정신의 사색하는 능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창작은 소리와 시간이라는 요소를 '다양성이 있는 통일성'이란 명제아래 구조적으로 질서화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구조적으로 질서화 할 수 있는 능력은 반복적인 수공예적 학습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바그너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실을 초월하여 무한의 공간을 추구하는 낭만주의 음악관에서 음악극(Music Drama)이란 장르를 창시한 바그너는 환상적인 극의 표현에 집중하다 보니 질서가 있어야 하는 음악의 영역을 떠났다고 비판하였다. 질서를 갖지 않은 작곡은 환상일 뿐이며 환상은 우연히 흥미로운 효과를 얻을 수 있으나 그 효과는 다시 그대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고 하였다.

 

스트라빈스키는 연주 할 때도 매우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박자기계 같은 세밀함을 추구하였다고 한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센티멘탈리즘을 배제하고 엄격하게 규칙적인 리듬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연주에서도 질서와 객관성을 중시한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대개 3기로 나눈다. <봄의 제전> 처럼 리듬이 선율의 보완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 중요성을 갖는 원시주의 음악이 1기이고, 18세기 작곡가들이나 글룩, 모차르트, 베르디, 구노 등의 영향을 받아 조성적 요소를 수용하여 명료한 표현, 선적 흐름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를 표방하는 음악이 2기이며, 3기 음악은 그가 처음에는 경원시 했던 동시대 음악가, 쇤베르크의 혁신적 기법 12음 음악을 쇤베르크가 죽은 이듬해에 받아들여 작곡에 반영한 12음기법 수용의 음악이 그것이다.

 

살아 생전에 모던음악의 가장 중요한 사조들에 참여했고 세계적인 발레 기획자 디아길레프, 모던발레 양식의 창시자인 포긴,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용가 니진스키와 함께 작업하며 20세기클래식의 위대한 음악가로 자리매김한 스트라빈스키의 가장 중요한 스승은 작곡과 관현악법을 개인적으로 사사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음악 가정에서 태어나 9세 때 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프랑스, 스위스, 미국 등에서 왕성한 음악활동을 하며 89세의 장수를 누린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음악가인 것이다. 1971년 뉴욕에서 세상을 뜬 그는 그의 유언대로 지금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잠들어 있다.

 

클래식 음악의 친구는 청중, 청중의 친구는 클래식! 친구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서로 잘 알아야 하고 잘 알기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니 <불새> <봄의 제전> <병사의 이야기> 등 변화가득한 새로운 리듬으로 생명의 박동을 알아듣게 얘기해주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들으며 클래식에 대한 앎을 넓히는 것도 삶을 의미있게 하는 한 방법이겠다.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