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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임형주 "해외무대선 국가대표라 생각하죠"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90주년 기념 음악회

"해외무대는 제게 올림픽이고, 그 순간만큼은 가슴에 태극기를 단 문화예술계 국가대표라고 생각하죠."

 

팝페라 테너 임형주(23)가 31일 밤 10시 연세대 신촌캠퍼스 대강당에서 한국독립운동사컨텐츠개발원 주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90주년 기념 음악회-2009 임형주의 제야콘서트'를 개최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연인 만큼, 애국가는 물론 한국 가곡, 혜은이의 '열정' 등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대학 공연은 처음인데, 학생도 많이 참석해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학교까지만 한국에서 다니고 나서 미국 줄리아드음대 예비학교로 떠난 그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까.

 

"중학교 때 역사에 관심이 많아 국사 과목은 매번 98점 이상 맞은 기억이 나요. 공연 제의가 왔을 때 한 번에 'OK'를 했고, 인터넷을 통해 다시 자료를 찾으며 공부했죠. 저도 여느 또래처럼 안창호, 김구 선생님만 알았는데, 최근 재독 작가인 고(故) 이미륵 선생의 자전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 O.S.T를 녹음하면서 숨겨진 독립운동가가 많다는 사실에 머리가 숙여졌죠."

 

 

그는 음악인인 자신도 미국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등지에서 해외 공연을 할 때면 국내 무대와는 다른 뭉클한 감정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노래하는 것 같아요. 제가 교수, 선생이라면 코치나 감독 개념이겠지만 저는 현역이니까 국가대표(선수)인 거죠. 또 해외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사람들도 애국자라고 생각해요. 해외공연 앙코르 때는 꼭 '아리랑',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는데 관객들은 가사의 뜻을 몰라도 저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게 되죠. 이게 문화가 가진 힘인 것 같아요."

 

활발한 해외 활동 덕택에 그는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한국을 대표하는 100인'에 선정됐다. 이전에는 '청소년이 존경하는 100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30인'에 뽑히기도 했다.

 

음악 외의 활동도 활발한데 대한적십자사,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충무로국제영화제, 서울 중구 등의 각종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서울시 CO2 닥터 명예홍보위원이기도 한 그의 최근 관심사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였다고 한다.

 

"홍보위원인 덕택에 당시 코펜하겐에 가는 대표단과 북서울 꿈의숲에서 아이디어 세미나를 했어요. 저는 거창한 생각보다 우리는 쉬는 날도 차를 끌고나가 밖에서 노는데, 1주일에 하루 정도는 차와 사람이 모두 집에서 쉬자고 말했죠. 그게 진정한 웰빙인 것 같아서요. 하하."

 

세상을 향한 다양한 관심은 평소 종합일간지 10개, 스포츠지 5개, 각종 잡지를 구독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활자 중독증'에 빠졌다고 한다.

 

"TV를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안 되요. 언론매체는 오늘의 트렌드를 읽는다는 생각에서인지 소설보다 재미있죠. 보통 제 분야인 문화ㆍ연예 기사를 먼저 읽고 그다음은 환율 등을 알기 위해 경제 면, 그다음 정치 면을 봅니다."

 

사회적인 활동과 더불어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 일본 가수 겸 작곡가 가토 가즈히코 등 올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디지털 싱글음반 '크리스털 티어스(Crystal Tears)'도 최근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으로 28일 현재 엠넷닷컴, 싸이월드뮤직, 벅스 등지의 각종 클래식차트 1위에 올라있다. .

 

그러나 2005년 4집 '로터스' 타이틀곡 '연인(戀人)' 이후 창작곡 발표가 뜸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지적하자 그도 바로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공들여 만든 창작음반과 리메이크 음반의 판매량이 같자 솔직히 갈등이 생기더군요. 좋게는 임형주라는 브랜드가 구축돼 어떤 음반이든 사랑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중이 어떤 걸 원하는지 피드백을 느끼기 힘들었어요. 지금껏 안주보다 안전한 길로 갔으니 이제 모험을 하려고요. 창작곡에 (배가) 고프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크로스오버 음악 시장이 클래식과 대중음악 어느 쪽에서도 너그러운 시선을 받지 못하는 건 아쉽다고 한다.

 

그는 "나는 클래식계에서는 대중적인 아티스트, 대중음악에서는 우아한 아티스트로 인식된다"며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가가 되고자 팝페라를 선택했다. 두 간극을 좁히는 건 여전히 숙제이고 목표다. 목표가 있기에 미래지향적일 수 있다. 많은 팝페라 가수가 나와 저변이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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