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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어리석은 지구인을 꾸짖다

동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 출간

"사람이라고? 숲에다 도로를 만든다면서 너희 별에선 사람들한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단 말이야? 당연히 나무들한테 물어봐야지. 나무들은 베이는 게 싫을지도 모르잖아."

 

스위스 작가 찰스 레빈스키의 동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비룡소 펴냄)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읽으면 뜨끔할 만한 내용이 많다.

 

주인공인 소설가에게 어느 날 다른 별 출신 '늙은 아이'가 수학여행을 온다. 겉모습은 10살 남짓한 아이이나 사실 499살이나 됐다. 그 별에서는 어른으로 태어나 다 자라야 비로소 어린이가 될 수 있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

 

소설가는 동ㆍ식물과 대화하고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아이에게 미셸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살며 지구의 풍습을 하나씩 알려주는데, "넌 뭘 모르는구나", "그렇게 살면 참 불편하겠네"라며 호통을 치는 것은 소설가가 아니라 미셸이다.

 

이들의 선문답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연상케 하는 철학이 있다. 동물과 식물을 짓밟으며 지구의 주인인 양 행세하거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목적과 가치를 향해 허덕이며 달려가는 인간 문명에 대한 풍자다.

 

사자를 숲에 풀어주자는 미셸의 제안에 소설가가 "그러면 경찰과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사자와 전쟁을 벌일 거야. 사람들은 사자를 무서워하니까"라고 말하자 미셸은 "전쟁을 하는 이유가 단지 겁나서라고?"라고 서글픈 얼굴로 묻는다.

 

검표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전철을 타려면 차표부터 사야 한다면서? 당연히 차표를 안 산 사람은 전철을 안 탔겠지"라고 의아해하고, 감옥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동물원에 가서는 "원숭이가 어쩌다 범죄자가 됐어?"라며 운다.

 

작가는 인간이 당연시하는 사회 규범과 관습, 가치가 과연 옳은 것인지 묻는다. 다만,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그저 재기와 해학이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동화에는 아이가 고향별에서 배운 여러 학문의 '교과서'가 한쪽씩 실렸는데, 언중유골이라 읽다 보면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목에 무언가가 걸린다.

 

"인생학(63학년용 교과서). 어른들은 '정치'라고 부르는 놀이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이 놀이를 하면서 만날 싸우지만, 그렇다고 이 놀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린이로 자라나려면 누구 한 사람이 미래의 일을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흐리겔 파르너 그림. 김영진 옮김. 232쪽. 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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