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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어린이, 언어의 미식가로 키워야"

'말놀이 동시집' 전 5권 완간

"엉뚱하다 뚱딴지 / 얼렁뚱땅 뚱딴지 / 두더지야 뚱딴지 먹자 / 엉, 뚱하다 뚱딴지 / 울퉁불퉁 뚱딴지 / 땅강아지야 뚱딴지 먹자 / 엉, 뚱하다 뚱딴지"

 

1977년 등단해 30여 년간 '대설주의보', '그로테스크',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등 화제작을 선보인 중견 시인 최승호(56)씨가 쓴 동시 '뚱딴지' 일부다.

 

시인이 우리말의 음악성을 살려 지은 동시들을 모은 '말놀이 동시집'(비룡소 펴냄) 시리즈는 2005년 출간 이후 총 12만 부나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5권 완간을 기념해 12일 기자들과 만난 시인은 "말놀이 동시들을 쓰면서 내 안에 장난스러운 소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집의 인기 비결로도 어른들이 시에서 찾으려 애쓰는 '뜻'을 버리고 '소리'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독자인 어린이 중심으로 쉽게 썼다는 점을 꼽았다.

 

가령, 2권에 실린 '도롱뇽'은 "도롱뇽 노래를 만들었어요 / 도레미파솔라시도 / 들어 보세요 // 도롱뇽 / 레롱뇽 / 미롱뇽 / 파롱뇽 / 솔롱뇽 / 라롱뇽 / 시롱뇽 / 도롱뇽"으로 이어진다.

 

"말놀이 동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점점 노래로 변해요. 아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를 읽으며 춤추고 노는 모습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동안 동시들이 뜻에만 치중해 아이들을 억압했는데, 해방해야 해요. 아이들은 '도롱뇽'을 아주 좋아하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어렵다고 그럽니다. 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느끼는 즐거움이 있는 시인데 어른들은 시의 주제와 상징을 따지며 어려워하는 거죠."

 

'말놀이 동시집'에는 별 뜻 없이 말을 가지고 노는 시들이 많다. "라미 라미 / 맨드라미 // 라미 라미 / 쓰르라미 // 맨드라미 지고 / 귀뚜라미 우네"로 이어지는 시 '귀뚜라미'처럼 소리글자인 한글의 맛을 살려 두운과 각운을 맞춘 시다.

 

"한시나 영시에는 운문시의 전통이 있는데, 우리는 한자로 운문시를 쓰고 한글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놀이 시 쓰면서 우리말로도 운문시를 쓸 수 있구나 했어요. 우리말이 지닌 우연성이 있거든요. '구리'로 끝나는 말에 딱따구리, 개구리, 쇠똥구리, 너구리가 있는데 이 낱말들을 반복하다 보면 말의 음악성이 살아나게 됩니다."

 

리듬감을 살려 노래하듯 읊을 수 있는 시들과 함께 언어의 모양을 살려 재미를 더한 시도 있다. '뿔'이라는 낱말의 쌍비읍(ㅃ)에 계속 비읍(ㅂ)을 이어 붙여 진짜 뿔 모양 그림이 된 시나 커다란 글자 '응'의 이응(o) 안에 또 다른 '응'을 계속 써 넣은 시는 언어의 색다른 회화성을 보여준다.

 

그는 "시인은 언어의 요리사 같은 존재"라며 "어린이를 우리말의 맛과 멋을 음미할 줄 아는 '언어의 미식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고 미식가들이 이를 즐기듯이 시인이 언어를 요리해 독자들이 이를 음미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햇빛', '햇살', '햇볕'은 시를 쓸 때 완전히 다른 물감입니다. '햇빛'은 찌르는 낱말이고 '햇살'은 곡선이고 '햇볕'은 면적이죠. 그 차이를 가르쳐줄 텍스트가 거의 없습니다. 말놀이를 하면서 언어에 대한 감각도 익히고 상상력도 키울 수 있죠. 예술을 가르칠 때 중요한 것은 느낌이지 지식이 아닙니다."

 

시인은 "음식은 요리사의 것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것이며, 작품은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라며 주입식 교육을 경계했다.

 

"우리 교육이 어린이들의 느낌이 섬세해지고 안목을 높아지도록 하는 교육은 아닐 겁니다. 경마장에서 어린 말들이 뛰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주입식보다는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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