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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도박

(47)<거다 리스 지음, 꿈엔들, 2006>왜 우리는 도박에 빠져드는가?

"도대체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가상공간의 재앙'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IT 강국 대한민국에 경고등이 켜졌다. 사이버 세상의 늪에 빠져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이 갈수록 늘어 현실 사회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가상공간의 유혹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부모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딸을 방치, 굶어 죽게 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일어났다. 도내에서도 인터넷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전북일보 3월 9일자 1면에 실린 <인터넷 게임중독: 마약같은 덫, 당신은?> 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위와 같이 시작하고 있다. 맞다.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혹 우리의 작명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인터넷 게임중독'이 아니라 '인터넷 도박중독'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도박'을 '게임'으로 인식한 나머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도박의 목적은 돈이지만, 게임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올 법 하다. 과연 그럴까? 영국의 사회학자 거다 리스(Gerda Reith)가 쓴 「도박: 로마제국에서 라스베가스까지 우연과 확률 그리고 기회의 역사」(김영선 옮김, 꿈엔들, 2006)는 그런 반론이 착각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어 흥미롭다.

 

리스는 도박의 목적은 흥분과 스릴이지, 돈이 아니라고 말한다. 돈은 그 흥분과 스릴을 느끼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박자는 승리를 위해서 또는 돈을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돈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다. 사실 도박자가 단조로운 게임에서 계속 이기게 되면 쉽게 지루해진다. (…) 우연의 요소, 즉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없는 게임은 스릴을 없애 버리고, 단순히 단조로운 노동이 되어버린다. 이 효과는 최고 수준의 포커 도박사들의 행동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집중된 노력과 기술을 통해 많은 돈을 딴 후에, 크랩이나 룰렛 같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도박에 베팅을 해서 그 돈을 잃은 경우가 허다하다."

 

과감하게 게임을 하기 위해서 도박자는 돈 자체에 무관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돈은 도박자의 정신세계에서 평가절하된다. 도박산업은 그런 평가절하를 돕기 위해 돈 대신 '칩'을 사용한다. 경제적 현실이나 금전적 손익 같은 냉혹하고 절실한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게임에서 칩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 결과, 도박자는 자신의 손을 통해 흘러 다니는 칼라 플라스틱 조각이 가진 가치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런 식으로 플라스틱으로 바뀐 돈은 더 이상 실제 세계의 의미 있는 부분으로 인식되지 않고, 게임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하찮은 말로 간주된다. 그래서 도박자는 자신의 자본금을 쉽게 잃게 되고, 게임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다. 여기에서 돈의 사용은 미래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게임의 다음 판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다. 돈을 거는 순간에 생기는 흥분은 돈의 경제적 가치를 압도한다."

 

이런 이치에 대해 도스토예프스키는 "핵심은 게임 그 자체이다. 맹세컨대, 돈에 대한 욕심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단언한다. 한 도박자는 "돈의 유일한 가치는 당신을 도박 행위에 남아 있게 하는 것이다. 일단 돈이 떨어지면, 자명하다. 당신은 판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이 없으면 판을 떠나야 한다.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 시장의 거래 규모는 연간 수조 원대에 달한다. 국내 최대 게임 포털인 NHN의 '한게임'은 고스톱과 포커 등 웹보드 게임을 통해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게임의 가입자는 200만 명으로 하루 방문자만 300만 명 이상이다. 정부는 웹보드 게임이 사행성이 높기 때문에 현금으로 게임머니를 거래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동아일보 2009년 8월 14일자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 사이트들은 개인 캐릭터를 표현하는 아바타를 구매하면 충전해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게임머니를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령 휴대전화 소액결제 등을 통해 해당 사이트의 사이버머니를 산 뒤 이를 이용해 아바타를 구매해 게임머니를 얻는 방식으로 현행법을 '우회'하는 것이다. 또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바꾸는 불법 환전도 상당했다.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이른바 '짱구방'을 통해 현금을 입금받은 게임머니 환전상이 일부러 게임머니를 잃어주는 방식으로 24시간 언제나 불법 거래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인터넷 게임 업체의 짱구방에서는 사이버머니 100조 원이 현금 7만∼15만 원, B업체에서는 사이버머니 1조 원이 현금 9만∼16만 원에 각각 거래됐다."

 

또 리니지2, 카발온라인 등 인기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은 중개사이트를 통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팔리고 있다. 게임 아이템, 캐릭터 등 거래를 중개하는 사이트는 보건복지가족부의 고시(2009.3.19)에 따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돼 청소년을 상대로 상거래를 할 수 없지만, 2008년 6월 경찰에 적발된 19개 사이트는 고시 이후 3만4,000여명의 청소년 회원을 가입시키고 88억1,200만원 상당의 게임아이템 거래를 중개한 혐의를 받았다. 적발된 게임아이템 중개사이트들에서 2008년에 거래된 총액만 8,620억원, 매출액은 444억원이었다. 또 1,147만명의 회원 중 청소년이 105만명(9%)에 달했다.

 

도박의 목적이 흥분과 스릴이라면, 도대체 그 정체는 무엇인가? 리스는 "도박 경험의 정점은 흥분이 최고조에 다다르고 도박자가 게임의 열기에 사로잡혀 게임을 계속하면서 주위환경, 자신의 패배, 시간의 흐름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고 말한다.

 

"이런 도박에서 도박자는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피곤함도 망각한다. 바로 이 상태가 전설적인 장시간의 도박을 낳았다. 예를 들러 샌드위치(Sandwich) 경(卿)이 게임을 중단하는 것이 싫어서 도박 테이블에 음식을 가져오게 하는 수단으로 샌드위치를 발명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샌드위치보다 더 놀라운 걸 발명한 사람이 전주에 있다. 앞서 소개한 ??전북일보?? 기사에 따르면, "하루 종일 인터넷에 빠져 사는 중학생 B군(16?전주시 중화산동)은 자신을 게임 속의 주인공으로 착각,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다. 또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아까워 대?소변을 의자에 앉은 채로 본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돈으로만 설명하려고 든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도박의 오래된 그리고 광범위한 인기는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관심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안전의 욕망? 게임 중독자건 도박 중독자건 모든 중독자들이 가장 못 견뎌 하는 건 바로 권태다. 그들에게 권태는 불안전한 상태요, 흥분과 스릴은 안전한 상태다. 도박에 대한 전문가였던 파스칼은 도박이 권태로부터 벗어나는 유용한 방법인 동시에 위험한 방법이라고 했다.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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