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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선비란]"진리·도의 지키는 선비정신, 창조적 지성으로 활용해야"

'선비' 저자 김기현 전북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기현 전북대 교수가 교정을 거닐며 사색에 잠겨있다. 안봉주(bjahn@jjan.kr)

현대인들은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탐욕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다. 삶을 성찰 하고 국가나 민족 등 큰 대의를 따지기보다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 이끌려 앞뒤 돌아볼 겨를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뭔가 허전하고 가치관의 혼란도 겪는다.

 

세상이 각박하고 영악할수록,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불안정한 삶일수록 세상물정 모르는 선비,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거는 선비가 더 그립기 마련이다. 이희승의 딸깍발이 같은 샌님이다. 그는 청렴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이다.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니는 그 모양이 퍽 초라하고 궁상이 다닥다닥 달려있지만, 생업에는 아주 손방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로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죽어도 겻불은 안쬔다는 지조 등의 생활신조를 지니고 있다. 목이 부러져도 굴하지 않는 기개, 사육신도 이 샌님의 부류요, 삼학사도 딸깍발이의 전형이다.

 

'선비'라는 책을 낸 전북대 윤리교육과 김기현 교수를 만나 선비의 참 의미는 무엇이고 현대인들이 선비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선비'라는 말에는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학처럼 고고한 기개의 인상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분제에 얽매이고 당파싸움을 일삼던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전을 찾아봐도 지칭의 범위가 각각 달라 혼란스럽습니다. 선비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유교를 인식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민중 속에 녹아 있는 기층문화로서의 유교로, 예를 들면 남존여비나 여필종부 등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입니다. 이는 유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일부 종교 신자들의 행태로 종교의 본질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부부관계만 하더라도, 퇴계 이황 선생이 갓 결혼한 어린 손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상경여빈(相敬如賓), 즉 손님처럼 서로 공경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랑은 상호 인격적인 존중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생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부부윤리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유교를 공부한 유학자들의 정치행태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 학자출신의 정치적 행태를 보고서 해당 학문의 본질을 말하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는 일부 성직자들의 비리와 타락상을 보고 해당 종교를 평가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역시 잘못된 것임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는 유교의 원론대로 살려고 했던 학자들로, 오늘날 우리가 그리워하는 선비들입니다. 조선시대 하나의 문화유형이기도 했던 청빈(淸貧)의 정신이 그 예입니다. 청빈을 '맑은 가난'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청'은 존재의 맑음이요, '빈'은 소유의 가난을 뜻합니다. 존재의 맑음을 추구하다보니 소유의 가난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존재'는 진리와 도의의 정신을 핵심으로 갖고 있습니다. 선비가 가난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정신을 고집했던 것은 그것으로 자아를 성취하고 또 사회를 완성하고자 하는 뜻에서였습니다. 옛 속담에 "정승 열 명이 왕비 한 명을 못 당하고, 왕비 열 명이 재야의 선비 한 사람을 못 당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선비는 진리와 도의의 표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임금이 맹자를 찾아가려고 하자 한 신하가 '직접 찾아가기보다는 왕궁으로 부르는 게 좋겠다'고 말렸습니다. 임금은 사신을 보내 '감기 기운이 있어서 갈 수 없으니 왕궁으로 와줄 수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사실 이때 맹자는 왕궁으로 찾아가기 위해 막 길을 나서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신의 말을 듣고는 '갑자기 아파서 못가겠다'며 사신을 돌려보내고 옆 동네로 문상을 갔습니다. 임금이 맹자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의를 보내니, 맹자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거짓이 들통 날 수 있으니 어의가 오기 전에 가서 누워있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아까는 아팠지만 지금은 나았다, 임금이 선비에게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다'고 했답니다. 진리와 도의를 대변하는 선비의 자존의식이 그렇게 드러난 것입니다. 정치가 진리를 위해 봉사해야 하지, 진리가 정치에 끌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를 받고나서야 벼슬길에 나간 것도 이러한 의식에서였습니다.

 

-어찌보면 세상물정을 모르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들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선비를 두고,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과 사회는 진리와 도의의 빛 속에서만 지탱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진리와 도의의 정신을 지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어왔기에 우리의 역사와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도의가 부재한 삶과 사회는 암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자신이 그러한 정신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유교가 너무 형식을 중시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마도 선비들이 예의의 형식을 너무 따지는 것 같은 인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면 그러한 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선비들은 원래 예의의 바탕으로 공경의 정신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공경은 오늘날 흔히 쓰이는 것처럼, 공손하고 다소곳한 태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경건의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며,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마치 큰 손님을 대하듯 정중하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해야 한다." 이는 어른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퇴계 선생은 손님이 갈 때에는 노소귀천을 막론하고 문밖까지 배웅했습니다. 선비들은 이러한 공경의 정신에서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하고자 했습니다. 예의란 그러한 정신의 표현형식입니다.

 

-사회적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빈부격차 등 사회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선비사상에 비춰볼 때 이같은 양극화의 해법은 무엇입니까?

 

▲사회적 갈등은 특히 가진 사람들의 독선과 이기와 아집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선비들은 독선과 아집을 강력하게 부정하면서 극기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극기란 신체훈련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를 극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를 위해 역지사지를 통한 배려와 보살핌의 정신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빈부격차의 문제는 오늘날 매우 중요한 정치사회적 현안입니다만, 선비들 역시 일찍이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나라가 가난할 것을 염려하지 말고 재화의 분배가 고르지 않은 것을 염려해야 한다." 더 나아가 『주역』은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보다 훨씬 철저한 약자배려의 도덕적 책무의식을 말합니다. 64개의 괘중 '손(損)'과 '익(益)'이라는 두 괘가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의 것을 취하는 것을 사회적 손실이라고 보고, 거꾸로 못 가진 사람에게 보태주는 것을 사회적 이익으로 여겼습니다. 또한 맹자는 말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고 부를 축적하려는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 선비는 사랑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비정신 속에서 사회의 갈등과 빈부의 문제를 풀 열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경쟁을 당연시하는 첨단시대에 역지사지와 배려가 다소 시대에 안 맞는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서구의 합리주의에는 개인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서양 어느 학자의 비유에 의하면 개인은 투명한 유리로 차단된 존재로서, 상호간 따뜻하게 교류되는 인정의 온기를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러한 개인으로 태어나서 사회에 진입하며, 사회는 개인들의 계약들의 산물입니다. 그들에게 권리와 의무의식이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만남과 헤어짐에 그토록 냉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결혼은 두 개인의 합리적인 결합이기 때문에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문제점은 매우 심각합니다. 개인들을 연결시켜줄 존재론적 매개가 없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보니 사람들이 고독과 불안과 우울에 빠지는 것입니다. 서양인들이 고혈압약보다 우울증약을 많이 복용하는 것도 결국은 개인주의의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선비사상에서 우리는 개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입니다. 처음부터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한자로 '인간(人間)'이란 말이 뜻하는 것처럼,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로서 상호의존하고 보완하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태극기는 그러한 이치를 잘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태극기 한 가운데의 동그라미를 상상해보십시오. 하나는 빨간색, 또 하나는 파란색입니다. 하나만으로는 존재의 의의가 없습니다. 두 개가 합쳐져야 원만하고 아름다운 원이 됩니다. 남녀, 부부, 그밖에 모든 인간관계에서 선비들은 상호의존하고 보완하면서 생산적인 조화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물론 선비정신의 약점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싸우면 어른들은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합니다. 조화를 강조하다보니 갈등의 생산적 요소를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하여 경영자와 갈등하면서 그들의 권익과 지위가 향상됩니다. 그런데 조화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불평등한 현존질서를 옹호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육에서 아이들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경쟁상대 학생의 공책을 몰래 훔쳐다가 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교육과 옛날의 교육은 어떻게 다른지요.

 

▲오늘날의 교육은 전문지식과 기능교육을 위주로 합니다. 그것을 평가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서로 서열이 매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교육목표에서는 경쟁을 피할 방법이 없고 무한경쟁이 부추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인격교육, 인성교육을 목표로 했습니다. 교양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교양있는 인간을 교육목표로 추구했습니다. '귀인(貴人)이 되려하지 말고 호인(好人)이 되라'는 옛 선비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삶의 목표를 높은 신분의 획득에 두지 않고 훌륭한 인격에 두었던 것입니다. 조선 중기의 하서 김인후 선생은 자기의 두 아들에게 소학만 10년을 가르쳤습니다. '호인'을 위한 공부에는 남과의 경쟁의식이 자리잡기 어렵습니다. 내 인격을 쌓는데 경쟁할 이유가 없습니다. 퇴계는 공부를 심산유곡에 있는 난초로 비유했습니다. 난초가 꽃을 피우는데 사람들이 와서 감상하거나 향을 맡아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난초는 다만 자신의 존재를 꽃피우려고만 합니다. 선비들의 공부정신도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존재의 완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선비들이 수양을 그토록 중요시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자신의 자아를 '닦고 길러'존재의 향기를 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공부를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한 공부가 밥 먹여 주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하지만 억만년을 빌어도 두 번 다시 못 가질 인생을 돈이나 권세를 위해 허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요? 권세와 돈만 추구하면 허무한 인생만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는 어떠한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고 깊게 고민해야 합니다.

 

선비들이 공부를 통해 진리와 도의의 정신을 닦고 또 실천했던 것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진리와 도의란 책갈피나 연구실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됨의 이치요 삶의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가정과 직장과, 출근길의 만남에서, 어디에서든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어떠한 존재이며 단 한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중요합니다. '세상이 그렇다'고 순응하면 우리는 허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몇 년전에 '메가트랜드'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 그런 기업체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업체에서는 매일 5분 명상등 자기영혼을 일깨우는 노력을 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 사람이 사는 세상을 목표로 합니다. 그것을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우리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순응하지 말고 반역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자신과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문제는 역시 마음먹기입니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 등의 우려도 높은데, 서양의 자연관과 우리의 자연관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시죠.

 

▲지난날 서양 사람들은 자연을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며, 야만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서양의 어떤 시인은 산을 지구에 생겨난 사마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문명건설을 위해 자연은 정복되고 파괴되어야 할 대상이지요. 자연의 인공화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자연은 만물의 모태이자 존재의 요람이었습니다. 생명을 외경하고 자연친화적인 문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개발이나 정복, 파괴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4대강 사업이나 새만금사업은 우리의 전통에 크게 어긋나는 짓입니다. 자연의 파괴는 모태의 파괴이고, 따라서 인간이 외로워지고 실존의 불안에 빠지는 원인이 됩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옛글에 '만인은 나의 형제, 만물은 나와 더불어 사는 이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바탕에 사랑의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애와 더 나아가 생명애의 정신입니다. 조선시대 어느 선비가 종기를 앓았습니다. 의원을 찾아가니 지렁이 즙을 내서 바르면 낫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선비는 만물이 살아 숨쉬는 봄에 어떻게 지렁이를 죽일 수 있겠느냐며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미미하게나마 남아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나무를 베기 전에 새끼로 이웃나무에 연결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서 생명을 이웃나무에서 살아가도록 했던 것이지요. 옛 임금들도 사냥을 나가면 네 방면이 아니라 세방면에서 짐승을 몰았습니다. 살고 싶은 놈은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의 발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죽임의 문화 속에서 피폐한 정신으로 살지 않고 살림의 문화 속에서 밝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서양에서 자연을 오히려 더 존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 정원의 나무 한그루를 자르려고 해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동양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서양을 닮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임의 문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배척한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선비정신을 어떻게 보존해 나가야 할지 한 말씀 해주시죠.

 

▲선비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창조적인 지성으로 활용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부정만 하려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요즘 중국에서는 공자아카데미를 전세계에 세우기 위해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자기의 전통을 부정하는 사람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국인이 한국말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머리를 물들이고 코를 높이고 서양인들을 흉내낸다고 서양인이 됩니까? 오히려 열등의식만 갖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에 입각해서 우리의 아름다움을 가꿔나가야 합니다. 물론 서양정신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서구화에 대한 반성으로 우리의 전통과 한국학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신은 외면한채 형식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로 상업적인 관심과 관광용으로만 접근하려 합니다. 이는 물론 잘못된 것입니다. 그 근본정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외형은 내면의 바탕을 가져야만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삶과 문화는 물론 한두 사람의 학문적인 노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사적 자아를 찾고 또 그 위에서 삶을 창조적으로 영위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역시 의미 깊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자신의 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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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lees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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